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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Jun 12. 2020

아리송한 첫 이별

드라마 속 연인들의 사랑은 특별하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 질기게 엮이고 앙숙이었던 사이가 묘한 분위기 속에서 입을 맞춘다. 배우들은 어찌나 다들 잘 생기고 예쁜지.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사랑 역시 저런 장면을 연출할 것이라 믿고 만다. 그래서 내 첫 사랑은 볼품없이 끝났다.


무엇을 처음이라고 하느냐에 따라 첫 사랑 상대가 달라진다. 첫 사랑이 누구에요? 질문을 받으면 다들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게 그 처음이 누구더라. 아마 ‘처음’ 때문이라기 보단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분해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일게다. 어디를 처음이라고 삼느냐에 따라 과거에 대한 사랑이 부정되기에 그 모두를 셈하기로 한다. 어디보자.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거의 사귀지도 못 하고 끝이 나버려 ‘첫 사랑’ 축에는 끼지도 못 한다. 그 처음을 가늠해보면 성인이 된 이후였다.


나의 처음은 스무 살 때였다. 이제 막 교복을 벗은 젊은이들이 향하는 곳은 19금의 세계였다. 이를 테면 편의점에 가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사거나, 밤 열 시 이후에도 피시방에 남아있거나, 무슨 무슨 포차에 들어가서 싸구려 안주들을 늘어놓고 초록 병의 이슬을 마시는 것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릿한 것이 있었으니.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동창들을 술집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그 때 나이 고작 스무 살. 중학교 동창이라 해봤자, 길어야 6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술병을 앞에 두고 갖는 만남은 왜 이리도 낯을 덥혔는지. 술집 안, 노란 끼 도는 조명 밑에서 서로가 상기된 채로 잔을 부딪쳤다. 성장기를 보내고 여자어른과 남자어른이 되어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묘한 것이었다. 야, 너 오랜만이다. 너 아직도 거기 살아? 고등학교 가서는 뭐 했냐. 모두는 안부를 더듬더듬 물어갔다. 예의상 다들 대입에 관련된 질문은 삼가며 교복 입을 적 이야기들을 주로 올렸다.


그 때 재밌었는데. 아직도 그 선생님은 잘 계실까? 너 걔 기억나지? 걔도 오늘 여기 온대. 인원이 많이 모일수록 쏟아지는 말들은 더욱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그러던 중, 중학교 시절 야구를 하던 남자 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훌쩍 큰 키와 벌어진 어깨는 자꾸만 시선을 끌었다. 어, 안녕. 오랜만이다. 어. 그러게. 안녕. 서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나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다. 같은 반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친구들이랄까. 그들과는 함께 듣는 수업이 딱히 없었다. 머리도 짧고 인상이 꽤 강해서 다가가기 어려웠다. 어쩌다 듣는 수업에서는 엎드려 뒤통수만 보였다.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었지. 그 정도의 소속감과 거리감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앞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지금은 기억 속 그것과 달랐다. 공석을 벗어나 사석에서 만난 은밀함이 느껴졌다.



밖은 어둡고 주위는 분주하고 우리가 있는 곳은 들뜬 마음에 무언가가 붕 떠 있었다. 대각선 방향으로 얘기를 나누다가 옆 사람과 속삭이다가 모두가 한 데 와하하하하 웃다가 자정을 훌쩍 넘겼다. 분명 같은데 어딘가 달라진 친구들 틈에서 서로의 눈빛이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했다.


다음날 운동을 하던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꾸만 내 앞 접시에 먹을 것을 올려주더니만. 네도 내 마음과 같았구나? 그에게서 잘 들어갔냐고 물어온 연락을 덥석 받아 틈틈이 별 거도 아닌 것들을 질문하고 답했다. 아직도 운동한다고 했나? 아, 지금은 부산에 있다고? 아, 정말? 그럼 이제 부산에서 훈련 받는거야? 물음표와 마침표들 사이에서 나는 이것이 사랑에 진입하는 단계임을 직감했다.


언제나 이 단계를 바라왔다. 10대 때 까지만 해도 연애는 하나의 금기사항이었다. 공부하면 대학 못 가. 나중에 대학 가면 멋지고 훤칠한 사람들 널리고 널렸어. 지금은 연애하는 거 아니야. 이런 말들을 만나는 어른들마다 하는 바람에 반항할 용기가 없던 나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그런 내게 20살은 연애가 열리는 시기였다. 러브 이즈 오픈 도어 아닌가. 내 문도 활짝 열렸으니 아무나 빨리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 폭발하던 때였다.


드디어 나도 연애라는 것을 하나보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즉시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수원에서 부산까지는 왕복 일곱 여덟 시간은 족히 썼다. 그래도 내가 연애를 기다려온 19년에 비하면 그 까짓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진짜 와버린’ 나를 멋쩍게 환영해주었다. 여기서 보니 더 이상하다며. 반갑다며. 좋은 곳 데리고 가주겠다며. 그와 나는 씨앗호떡을 먹고 해가 저물 무렵 광안리 해변 길을 걸었다. 밤에 보는 바다는 낮의 바다와는 소리가 달랐다. 쏴아아아 퍼지는 파도소리가 더 깊게 부서졌다. 그 소리 밑에서 한 발 한 발 맞춰 나란히 걷다보면 스치는 손 사이가 간지러워 자꾸만 마음이 이상했다.


이후로 그와 나는 ‘사귀자’ ‘그래’의 단계를 넘어 ‘오늘부터 1일’을 지나 공식 네 여자친구, 네 남자친구 사이가 됐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와 비슷한 장면의 마지막이다. 이후 이어지는 후일담은 어디 내놓기 창피한 과거들이다. 수원에 올라온 나는 부산의 그와 연락이 잘 안 닿았다. 그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며 연락 간의 시차를 점점 넓혔다. 그럴수록 서운함만 쌓였다. 무엇보다 서운했던 것은 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드라마에서 보던 것은 이게 아닌데. 서로 좋아 죽어서 안달 났던데. 원래 이런건가. 이게 내가 20년을 참아 바라온 그 연애라는 것의 현실인가.


다시 만나려면 부산행 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고, 그가 나를 보러 수원에 오기에는 그만큼의 시간적 여유와 감정이 충분치 않았다. 그렇게 한 달 간의 볼품없는 만남 끝에 그의 긴 문자 메세지로 공식 연애는 끝이 났다. ‘많이 생각해봤는데...’로 시작해서 ‘미안해’로 끝이 나던 그 문자. 그것이 나의 첫 이별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해본 이별들 중에 가장 아리송한 이별이었다.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고 아리지도 않고. 그냥. 이게 맞나. 원래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헤어지는건가. 모든 것이 아리송했던 시간들. 젓가락을 처음 집어보는 아이가 이렇게 잡아보고 저렇게 잡아보고 결국 포크처럼 찍어 내리는 모습이 꼭 내 첫 이별 같았다.


그 시절을 나눈 친구들은 얘기한다. 야, 그건 사귄 것도 아니지. 사귄거라고 말하기도 창피하다 얘. 그럼 나는 얘기한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냥 잠깐 재밌었지 뭐.


이후로 사랑 같은 것들을 안 믿기로 했다나 뭐라나. 한동안은 드라마는 드라마라며 다시 문을 꽁 닫아 버리고 러브 이즈 낫 오픈 도어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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