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프라하 올 수 있을까 했어요."
혼자 온 손님이 말을 건넸다. 차분한 생머리에 선한 눈매가 어딘가 교양있어 보였다.
"전남자친구랑 왔었거든요. 그래서 프라하 여행하다보면 좀 마음이 그래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
여자분은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셨다. 그러셨구나. 그때의 나도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괜한 동질감을 느꼈다.
프라하에 오기 전서부터 만나온 사람이 있었다. 일년 반 정도를 만나고서 헤어졌다. 타지생활에 유일하게 마음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의 슬픔보다 오히려 두려움이 더 컸다. 혹시라도 헤어지고 난 다음에 너무 힘들면 어쩌지. 기댈 곳 없이 외로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6년을 사겼어요. 결혼까지 다 준비했죠. 드레스 입어보고 상견례 다 하고 딱 청첩장 돌리기 전이었는데 헤어졌어요. 저한테 헤어지자고 하더라구요. 가이드님은 차인건 아니죠? 저는 차였어요.(웃음)"
싱긋 웃어 보이는 손님의 얼굴에서 잠깐 봄바람이 지나갔다. 손님은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유학 생활 중에 큰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 남자친구였고 그래서 더욱 헤어짐이 무섭고 힘들었다고 터놓았다. 맞아요. 타지생활에서 유일하게 기대고 있던 사람과 헤어질 때는 그냥 헤어짐과는 다른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내 헤어짐을 곱씹었다.
"헤어지고 죽을까 했는데(웃음). 살아지더라구요. 생각보다 강해요."
그 고운 얼굴에서 죽음이란 단어가 오고갔다. 깊은 슬픔은 안고 있는 사람은 소리 내어 엉엉 우는 사람이 아니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 슬픔을 배에 띄워보낸 사람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손님은 프라하 성 밑 주황색 지붕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친구랑 거닐었던 카를교, 프라하 구석, 젤라또 가게, 구시가지 광장, 트램이 지나는 길. 모든 것들이 장난감처럼 붙어있는 풍경을 보며, 손님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좋은 만남이 또 찾아올거에요. 나는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죠."
손님은 웃어보였다. 조근조근 읊조리는 말에는 향기가 났다. 손님의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였다.
그로부터 삼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그 손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지. 어떤 만남이 찾아와 다시 사랑을 속삭이고 계실지. 혹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 그래도 예뻤노라 추억하실지. 때론 너 이새끼 잘 사나보자 이를 갈고 주무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별은 마침표이자 사랑의 쉼표인 것. 잠시 쉬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또 방문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