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 하우스. 룸메이트. 하우스 메이트. 이 단어들이 왜 이렇게 설레고 낭만적으로 다가왔는지. 프라하로 떠나오기 전, 혼자 집을 구할지 집을 셰어해서 사용할지를 고민하다, 나는 셰어를 하기로 선택했다. '메이트'라는 단어를 몸소 경험하고 싶어서도 있거니와 집값이 워낙 비싸서 혼자 살 엄두가 안 난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독일인 M 군과의 셰어 생활을 했다.
M 군은 점잖고 말수가 적은 친구였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터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는 것 정도. 사실 내겐 '돼지고기를 못 먹는 친구'였다.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서 굽고 있으면 냄새라도 나면 어쩌나, 괜히 이 친구한테 미안해져서 그다음부터는 나도 덩달아 돼지고기를 잘 먹지 못했다. 간혹 여자친구를 데려와 당혹스러운 소리를 들려주긴 했으나 나름 괜찮은 셰어 생활이었다. 적어도 다음날 일어나서 '내가 죽었어?'라고 물어보진 않았으니.
문제는 독일인 M 군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빈 방에 새로 들어온 러시아인 E 군이었다. 이 친구는..... 친구라고 부르기도 꺼려지는 불청객 같은 존재다. E 군이 들어오고 나서 우리 집은 문이 고장 나고, 세면대가 자주 막히고, 설거지를 하지 않은 그릇이 서랍에 박혀있거나, 한 달에 한 번씩 E 군의 여자친구가 와서 졸지에 세 명이 사는 집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브라우니 주의보이다.
한 번은 E 군이 아침 일찍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저기 미안한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깨워서 미안한데 잠깐 나와봐봐"
잠결에 비몽사몽인 나는 '아, 또 무슨 사고 쳤나 보다'라는 직감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들었던 질문 중에 가장 대답하기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 지금 살아있어 아니면 죽어있어?"
"어?????"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오늘 만우절인가. 체코도 만우절 같은 것이 있나. 이 러시가 애가 드디어 돌았구나. 아침 댓바람부터 장난을 치는 건가. 진심인가. 여기서 그럼 죽었다고 하면 나는 유령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너무 진지하게 죽었는지를 고민하는 E 군의 표정을 보면서 장난이 아님을 직감했다. 진심으로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러곤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나 지금 눈에 이상한 것들이 보이는데.... 내가 죽은 것 같아. 나 지금 살아있는 거 맞지? 나 좀 꼬집어줄래? 나 살아있는 거 맞지?"
AM I ALIVE?라며 울상 짓고 물어보는데 차마 그 얼굴을 마주하고 안 꼬집을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라 제발. 염려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장난치는 것인지 의심하는 마음을 담아 손등을 꼬집었다. E 군은 그제야 아픈 감각이 느껴진다며 안도의 숨을 쉬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충 어제 클럽을 갔는데 친구가 준 정체 모를 술을 먹고 이렇게 되었다는 것.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을 먹은 것 같다며. 확신이 없이 '혹시... 그 술이, 혹시... 그 친구가'식의 가정법으로 상황을 알려줬다. 나야 영문을 알 수 없으니 가정법을 가만 듣다가 코리안 트레디션이라며 꿀물을 타주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E 군이 다시 방 문을 두드렸다.
"야.... 진짜 미안해... 저번에 그런 거 사실 클럽에서 누가 브라우니를 줬는데 그 안에 마약이 들어있었나 봐... 그때 아침에 그랬던 거 미안해"
브라우니? 생각도 못 한 브라우니에 새삼 놀라고 다시 며칠 전 살았니 죽었니 사건이 떠올랐다. 클럽에 가서 브라우니를 잘못 먹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골목 으슥한 곳에서 은밀하게 무언가를 하고 온 줄 알았더니 영문 모르고 먹은 브라우니가 저승 체험을 선사해줬구나. 참 얼마나 놀랐을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조심 좀 해라라는 무언의 눈빛을 주며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다.
요즘도 가끔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그 당황스러운 질문과 설마 내가 유령인가라는 어이없는 찰나의 생각들.
만약 외국으로 여행을 나와서 즐거운 밤을 즐길 때, 누군가 브라우니를 건넨다면 절대 먹지 마시길! 뜻하지 않은 저승 체험을 할 수도 있으니.
에필로그
"나 그래서 정말로 살아있는 거 맞지?"
"응 맞다니까!!"
"뭐 이상한 게 돌아다니는 거 같은데... 여기 저승세계 같아"
"그거 네 고양이야....."
*외국여행 시 브라우니 및 남들이 주는 음식은 일절 섭취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