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자매 : 낯선 이의 응원

by 두루주

"언제 한 번 놀러와. 코자민박."


"코자요?"


"응. 코~ 자라고 코자민박이야."


작년 겨울 즈음이었나. 아마 11월 말 아니면 12월 초였을 것이다. 스페인에서 민박집을 하시는 사장님께서 투어 손님으로 오신 적이 있다. 아직 타지생활이 만으로 갓 1년 넘은 초보자라 그런지, 그 곳이 어디든 한국을 떠나 타지에 사는 분들을 뵈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저 마음 어딘가 나처럼 한국이 종종 그리우려나, 집에 있는데도 집을 가고 싶으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무는 이 곳을 사랑하려나. 그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홀로 느끼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간다.


11월은 겨울 휴가를 한 달 정도 앞 둔 때였다. 우리 팀은 1년에 한 번 이주 정도의 휴지기를 갖고 한국을 다녀오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계획대로라면 한국을 갔어야했지만, 그 당시 나는 괜한 오기로 유럽에 남아있었다. 한 번 가면 영영 머무르고 싶을까봐 그런 것도 있었고 유럽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될 지 모르기에 여행을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침 그 때에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으니 옳다구나 이번 겨울은 바르셀로나에서 보내야겠다며 며칠 뒤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12월 말, 일주일을 코자민박에서 지냈다.


"어머 웬일이야. 무슨 친한 동생이 온 것 같네. 진짜 왔네. 진짜 왔어."


민박집 사장님은 덜컥 와버린 나를 반겨주셨다. 민박 사장님과 여행 가이드. 직업은 다르지만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서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고충을 나누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타지생활에 관한 고충으로 이어졌다. 그러곤 나는 사장님께 풀이 죽은 얼굴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사실 한국에서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프라하에 남아야 하나 고민이 돼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때의 나는 큰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온 프라하 생활이 생각보다 잘 맞았고 영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놓기엔 미련이 무거웠다. 한 번의 선택으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것 같다는 생각에 상상만으로도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내게는 말동무가 필요했다. 본래 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함께한 역사가 전무한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하게 털어놓고 숨을 돌린다.


"그렇구나...아이고 머리 아프겠네. 그러게 정말 큰 고민이다."


사장님은 내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사장님만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스페인에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나와보니 어떤 것들이 힘들고 어떤 것들이 좋았는지. 사장님의 이야기 뿐 아니라, 사장님이 보고 들은 외국 생활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도 풀어주셨다. 이야기 보따리상 마냥 순식간에 화제는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며 꽤 많은 분들의 인생을 엿봤다.


때론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가, 사장님은 무릎을 털고 일어나더니 가방을 챙기라고 하셨다. 일단 그게 중요하니. 바르셀로나에 왔으면 맛있는 것 먹고 구경해야지. 그제서야 나도 바르셀로나의 골목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로같은 골목들을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면 이상하게 복잡했던 생각은 오히려 그 미로들 속으로 속속들이 숨어 사라졌다. 어쩌면 내 여행의 목적은 바르셀로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머리 속의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고 싶어 어디든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기에 바르셀로나는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으니. 프라하로 돌아오는 날,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인사도 못 드리고 민박집을 나섰다. 사장님은 미리 내 일정을 꿰고 전 날 밤 침대 위에 선물 보따리를 올려 두셨다. 립밤과 핸드크림 그리고 비행기 타러 갈 때 먹을 빵과 오렌지 주스. 비닐백에 담겨 있는 선물들 가운데 하늘색 쪽지가 펼쳐 있었다.


"현주야. 그 때 프라하에서 투어할 때 보니 추워서 그런지 손이랑 입술이 다 허옇게 보이더라. 무슨 결정을 해도 다 옳으니 주눅들지 말고 프라하에서 열정적으로 다시 살고! 건강하고! 어케 됐는지 소식 종종줘! -코자매-"


눈물이 왈칵 났다. 그 눈물은 복잡했다. 결정을 앞두고 아득한 미래에 작아져버린 나를 들킨 것 같았다. 누구에게 들켜도 좋으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게 나를 들킨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렴 뭐라도 좋으니 힘내라는 낯선 이의 응원을 받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어깨를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매라는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남는지. 내게 정말 언니가 생긴 기분이었다. 프라하에 돌아와 짐을 풀고 파란색 메모지부터 벽에 붙여 두었다. 요즘도 종종 그 메모지를 올려다본다. 붙여두고 보면 이상하게 힘이 돈다. 부적 별 거 없다.


한 때 나는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듣는 사람이었다. 내겐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쉬웠기에 택한 방식이었다. 그 방식 덕에 나는 친구가 많았다. 모두가 다른 곳에 털어 놓지 못 하는 말들을 내게 들려줬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비밀을 지켰다.


하지만 그렇게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어딘가 모르게 외로웠다. 내가 나를 벌거벗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낯선 이들이었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서는 용기가 났다. 대학교에 들어서면서 그 경계를 허물어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수년간 쌓아온 내 삶의 방식은 흔적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낯선 이에게 쉬이 무너지고 녹는다.


나의 고질병 같아 고치고 싶지만서도 이런 낯선 이의 응원을 받으면 종종 그대로 살련다 싶다. 작년 겨울,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주일은 유난히 따뜻했다. 날씨 덕분인가. 그 덕분인가. 모른 체 하며 그 따스함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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