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 행복을 묻는 사람

by 두루주

작년 여름이었다. 가이드로 첫 데뷔를 하고 나서 처음 맞는 그 해의 여름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유럽 대륙의 햇빛은 어찌나 강하던지 살갗이 탄다는 표현이 글자 그대로 느껴졌던 나날들. 야외에서 여서 일곱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진이 빠져서 젖은 빨래처럼 누워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해 여름이 그립다.


나에게 행복을 묻는 손님을 만난 날이기에, 요즘도 종종 그날을 그린다. 그분은 오후 투어에서 만난 손님이었다. 안경을 끼고 순박한 미소를 보여주셨던 중년의 남성분이셨는데 나는 어쩐지 그분의 겉모습보다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함과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태도, 말솜씨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한 번은 손님께서 여쭤보셨다. “제가 들어드릴까요?”


내가 워낙 키가 작은 탓에 투어 중에는 노란색 지시봉을 들고 다니는데, 그 지시봉을 나서서 들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말도 하고, 그거도 들어야 하고 얼마나 힘들어요. 제가 들게요. 한사코 말려도 결국 지시봉을 가져가신 덕에 그날 투어는 한 쪽 손이 편했더랬다. 투어가 끝나고 지시봉을 건네받으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휴.... 아니에요... 제 딸이 현주에요. 그래서 자꾸 일을 하시는데 딸 모습이 겹쳐 보여서... 딸 같으니까.. 그래서 그냥 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그때의 눈물은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쁨도 아니고 벅참도 아니고, 말하자면 부러움이랄까. 같은 이름을 가진 그 현주라는 사람이 못내 부러웠다. 타지에서 부모님의 부재를 꽤나 느꼈나 보다. 그게 왈칵 터져 나와 결국 그분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프라하 성을 도망치듯 내려왔다. 나중에 다시 뵙게 된다면 제대로 인사를 드리겠노라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해 겨울 다시 그분을 뵈었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특유의 머쓱하고 순박한 미소를 보여주시는 그 손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옷차림이 무거워진 것 빼고는 몇 달 전 여름과 같은 모습의 같은 미소였다.


“그럼요! 당연히 기억나요!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다시 오시게 된 거예요?"


한참을 들떠서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투어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겨 함께 차를 마셨다. 그리곤 그분께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씀하셨다.


“가이드님,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기는 참 그렇지만....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어렵게 꺼내신 말씀이셨다. 그 순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인가. 그러다 다음 말을 듣고 허를 찔린 듯 멍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가이드님.. 행복하시냐고요. 그거 여쭤보려고 했어요. 그렇잖아요 인생이~ 행복하려고 사는 거지. 현주 님은 저번에도 웃고 계시고 이번에도 웃고 계셔서 참 밝은 것 같은데 정말 그 속도 행복하신지 싶어서요. 저는 현주 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때그때 행복해야지, 미래를 위해서 불행을 감내하고 미루면 그럼 언제 행복해요. 지금의 작은 행복이 모여 좋은 인생이 되는 거지요....”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행복하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얼마나 될까. 친구 사이에도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도 서로 간의 행복을 물었던 적이 거의 손에 꼽는데 말이다. 그분께 행복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니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들을 잘 느끼며 살고 있는가. 그분 덕분에 하루 종일 나의 안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불행하지 않다’였다.


여태까지의 삶은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지만 이를 돌아보면 숱하게 힘든 순간이 있었고 아쉬운 나날도 있었고 잠 못 드는 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내게 안녕한지, 행복한지, 오늘은 어떠한지를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리 불행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마다의 고난들은 그 자신들의 몫이지만 이를 묻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 인생에 짧은 오지랖을 던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행복을 묻는 그분께 배운 삶의 태도랄까.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당신께 행복을 묻는다.

행복하신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만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