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멍청이들을 만나며
며칠 전 기분이 더러운 경험을 했다. 유럽에 살며 처음으로 나를 향해 눈을 찢는 사람을 만났다. (이하 그 사람은 똥 멍청이로 호명한다.) 그 똥 멍청이는 내 친구의 남동생의 친구였다. 한 마디로 나에게는 그냥 남이란 소리다. 내가 어쩌다 그 똥 멍청이를 마주치게 됐냐면 사건은 이러하다.
때는 삼일 전쯤, 친구가 동네에서 펀 페어가 열렸다며 내게 연락을 했다. 펀 페어는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동식 월미 랜드 정도가 되겠다.(이 곳은 놀이기구가 전국 콘서트 투어처럼 돌아다닌다.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을 두고 펀 페어를 연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처럼 큰 놀이공원은 아니지만, 작은 바이킹이 있고 밤이면 네온사인이 켜지는 곳. 월미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과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의 모든 것은 다 좋았다. 부스에서 사 먹는 맥주도 곳곳에 왕왕 울리는 노래도 여기저기 알코올에 취하거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나를 들뜨게 했다. 문제는 똥 멍청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말이다. 나는 당시에 친구(릴리)와 친구의 남동생(마테이)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미샤)까지 해서, 네 명이서 범퍼카를 타고 나왔다.
여기저기 쿵쿵 들이받다가 나오니까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 같이 맥주도 마실 겸 맥주 부스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 두 명이 걸어오더니 마테이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이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두 명은 이내 시선을 돌려 마테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그리곤 그 시선을 내게 고정하고 물었다.
도쿄?
그것이 똥 멍청이가 한 첫마디였다. 아는 아시아가 일본 뿐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일본 사람으로 보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노우. 코리아. 서울.
나는 똥 멍청이의 첫 발언을 정정해주었다.
이어 그 똥 멍청이는 웃으며 무어라 무어라 하더니 난데없이 양손으로 눈을 찢어 보였다.
미친?
정말 내 속은 순간 어느 단어도 아닌 물음표만 뜬 채로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 인간이 지금 내 앞에서 무얼 하는 거지. 가뜩이나 옆에 있는 내 친구는 내가 상처 받을까 봐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금세 싸해졌다.
똥 멍청이는 그것이 잘못인 것을 안 모양인지 갑자기 다른 제스처를 취했는데 이것이 더 가관이었다.
눈을 찢던 손가락을 바꿔 검지와 엄지로 집게 모양을 만든 뒤 눈을 크게 세로로 찢는 것이었다. 이후 체코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무어라 말을 했는데 이미 속이 뒤집어진 나에겐 그것이 무슨 말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따끔하지만 점잖은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대체 뭐라고 해야 이 똥 멍청이가 간신히 그냥 멍청이가 될까를 궁리했다.
유 아 드렁큰.
너 취했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점잖은 말이었다. 너 취했다=너 지금 제정신 아니다=너 멍청이구나?
그러자 똥 멍청이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흔들어 보였다. 아마 이 정도로 안 취해 라는 것을 보여준 모양인데, 나는 그의 주량에는 한 방울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이후 똥 멍청이와 그의 친구는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또다시 갑자기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그 자리엔 속이 뒤집어진 나와, 당황하고 있는 마테이와 미샤, 그리고 누구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릴리만이 남았다. 릴리는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나한테 사과를 했다.
어딜 가나 잘못은 딴 놈이 하고 사과는 엉뚱한 사람이 하는 것이 미웠다. 적어도 개미 코딱지만큼 정의를 지키려면 사과는 잘못한 사람한테 받아야 하는 것이지 않나. 차별에 노출되며 처음으로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한편 일 년 전이 생각났다.
사실 이런 인종차별이 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쉬이 차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프라하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런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는 점잖은 한 마디를 날릴 시간에 허공에 뻐큐를 날리곤 했다. 때는 프라하에 온 지 삼 개월째 되던 어느 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