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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Aug 21. 2020

09. 세상의 중심에서 뻐큐를 외치다(2)

똥 멍청이들을 만나며

(1) 편에서 이어집니다.


프라하에 온 지 삼 개월이 되던 때쯤, 당시는 어두 컴컴한 한밤 중이었다. 나는 동기와 함께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서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중심가를 걷고 있었다. 그때 여서 일곱 정도 뭉쳐 거리를 활보하는 10대 여자애들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멀리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사건은 그 아이들이 우리를 지나칠 때 일어났다.

               

무리 중 한 명이 으아아 아악 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나 싶지만 외국에서 쉽사리 사람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종류의 똥 멍청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아이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 무리는 우리가 놀란 것을 보며 우악스럽게 웃고는 갈 길을 갔다. 지금이야 상종하지 말자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때는 내가 당할 수만 없다며 다 들이받았다. 무엇보다 하하호호 웃으며 계속해서 갈 길을 가는 그들이 뻔뻔스러웠다.               


나는 저 멀리 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헤이!!     

저 끝까지 들릴 수 있도록 더 소리 질러 불렀다.     


헤!!!! 이!!!!!!!               


그러자 그 무리는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자그맣게 보이는 그 아이들은 시끄럽게 움직였다. 몇몇은 눈을 옆으로 찢는 것은 기본 아시아에 관한 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차이니즈!!!! 칭챙총! 치나 치나!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열정적으로 우릴 향해 욕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지지 않고 무어라 뱉어내고 싶었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백인을 비하하는 표현은 아시아인이나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만큼 많고 흔하지 않았다. 순간 그 사실에 더 화가 났다. 그래 그냥 국제적으로 먹히는 욕을 하자.


그리고 프라하 중심 거리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그 아이들을 향해 들어 보였다. 뻐큐다 이 녀석들아.


내 인생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운 적은 초등학교 3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단짝 친구가 그의 친구에게서 그것을 배워온 다음 날이었다. 친구는 조회시간에 뻐큐를 배웠다. 운동장에서 줄을 서서 조회를 하고 있는데 옆 반 남자애가 비실비실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고 했다.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나빴는데 알고 보니 욕이었다고 알려줬다. 이후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가운데 손가락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욕처럼 찰지고 함축적으로 내 감정을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기분 나빠! 너 그만해! 경고야! 이 바보야! 이런 말로는 나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뻐큐가 사실은 FUCK YOU 였으며 YOU 앞에 있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를 알고 가운데 손가락을 접었다. 종종 내가 그런 말을 썼다는 사실에 창피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 만에 나는 프라하 중심가에서 다시 굳세게 뻐큐를 외치고 있었다.


저 멀리 있던 여자아이들은 나의 손가락을 보자마자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손가락 마디만큼 보이던 아이들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한 뼘만큼 보이고 팔뚝만큼 보였다.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내 눈 앞에 와 있었다.


열다섯 언저리로 보이는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진 그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 머리칼을 만졌고 어떤 아이는 내게 어깨동무를 둘렀다. 서로 언어가 달라서 말로는 못 싸우겠으니 이제 몸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너 뭐라 그랬냐. 뭐 했냐 방금. 대충 이런 느낌의 말들을 들으며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옆에 있던 동기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을 느끼고 아이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헤이. 스탑. 고 유어 웨이. 오케이 오케이 스탑. 그리고 말리는 와중에도 말로 잽을 날렸다. 열다섯 무렵 청소년기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해버린 것이다. 헤이. 키즈. 칠드런. 스탑. 아이들아 그만하렴. 그 말을 들은 무리는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고 이후 10분 동안 우리 뒤를 바짝 따라 걸으며 칭챙총, 차이니즈, 뻐큐, 우우우우 와 같은 온갖 욕을 쏟아냈다.


오늘은 집에 가서 귀를 씻어야겠구나. 귀에 똥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사건을 회사에 이야기하니 엄청나게 걱정을 하셨다.


"어휴 큰일 나려고. 나중에 또 그런 일 당하면 절대 똑같이 하지 마요... 우리는 현주 씨 걱정돼서 그래요. 외국 나와 살다 보면 정말 별일이 다 있는데 그때마다 똑같이 대응하면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인정하기 싫지만 어쨌든 우린 외국인이니까, 안전이 우선이에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렇게 크게 번질 줄 몰랐다. 그냥 지나치면 됐을 것을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경험까지 했으니... 그 조언을 백번 이해했다. 사실 나이만 열다섯이지 키는 나보다 훌쩍 큰 아이들이었다.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다. 그 날 그 정도에서 그쳤던 것이 다행이었다.


회사에서는 마음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다며 말을 했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외국인보다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 외국인으로서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겨도 너무 맞대응하지 말라고 했다.


내 행동이 어리석었구나 싶으면서도 마지막 말에서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 합리화가 싫었다. 진정으로 합리를 시켜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그들의 차별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차별받고 맞대응을 안 하면 그게 잘못인지도 모를 텐데. 끝없이 대응하고 싶은 마음에 물음표를 던졌다.


한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생각했다.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멸시도 생각했다. 그 누군가의 맞대응을 그저 예민한 거라며 취급하는 어떤 이의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하고 부당함에 익숙해지는 많은 이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들에 속하는지 권력을 가진 어떤 이에 속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해봤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것이 똥 멍청이들에게 고마운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 날 이후로 물음표는 계속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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