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래서 통합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적막한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머리 위로 까마귀가 까악까악까악 세 번 정도 운 듯했다. 피부색이 다르고 하는 말이 다른 각각의 사람들은 행여나 앞에 나온 사람과 눈을 마주칠까 눈알을 요리조리 굴렸다. 도합 열여섯 정도 되는 모든 이가 눈을 굴리는 소리만 도르르 났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 신분으로 앉아 있었다. 웨어 알 유 프롬이라 묻지 않아도 어디서 온 듯 한 지 알 것 같았다. 적어도 지도의 어느 쪽에서 왔는지 감을 잡을 듯했다. 그 정도로 서로는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그 날은 프라하에서 주최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첫날이었다. 주된 내용은 체코어 수업이고 일주일에 두 번씩 체코어를 무료로 수강받는 좋은 기회였다.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가장 기본이라는 A1에 배정받은 나는 그 열여섯 정도 되는 이방인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 그럼 다시... 통합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그냥 간단히!"
정적이 오래가자 앞에 나온 스태프는 다시 말을 이었다. 명색에 이름이 '사회 통합 프로그램'인데 우리가 통합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 짙은 질문이었다. 통합이라... 너무 추상적이라 무엇부터 떠오르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입이 꾹 다물어졌다.
"같이 사는 것?"
그때 적막을 깨고 캐나다에서 온 듯한 안경 쓴 여자가 말을 꺼냈다.
"좋아요! 또? 같이 사려면 무엇을 해야 하죠?"
스태프는 반가워하며 질문에 꼬리를 물었다.
"서로를 알아야 하나?"
인도에서 온 듯한 남자가 그 꼬리를 물었다.
"맞아요! 그럼 또 무엇을 알아야 하죠? 여러분들은 이 곳에 살면서 무엇을 알고 싶나요?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요?"
스태프는 질문을 점점 더 집요하게 좁혔다. 그럴수록 떠오르는 것은 많았고 대답하기 훨씬 수월해졌다.
"집 사기당했을 때 도움받는 방법이요."
내가 말했다. 아직 사기당한 적은 없지만 혹시나 이러면 어쩌지 하는 수만 가지 상황 중 하나를 얘기했다.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는 동기가 사기당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구 곳곳에서 온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일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구한 다음에 고용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세금은 어디로 어떻게 내고, 비자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의료보험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각자가 체코에 첫 발을 들였을 때 무엇으로 힘들어했는지 조금 느껴졌다.
"좋아요. 좋아요! "
점점 이야기가 길어지자 스태프는 말 허리를 잘라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곤 다시 '통합'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자, 제가 생각하기에 통합은 이래요."
그러며 약 십분 간 긴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내용은 이러했다.
통합은 여러분들의 말처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고 이해해야 해요. 통합은 곳곳에서 온 여러분들을 다 체코 사람들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각각 몸 담고 있던 나라에서 배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문화는 여러분만의 독특한 개성이자 장점입니다. 저희의 목적은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더불어 살기 위해서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곳에 살면서 체코의 법, 문화, 예절, 언어를 배운다면 서서히 체코라는 나라와 체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말 중간중간, 교실 안에 앉은 열여섯의 고개가 끄덕끄덕 상하로 움직였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고개가 힘차게 움직였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작은 오해들은 사라질 수 있고 더 존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 체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까칠해, 왜 이렇게 툴툴거리지 하는 그런 오해들도 이해하면 다 납득이 가니까요.
스태프는 웃으며 말했다. 체코 사람으로서 체코 사람을 생각하기에도 꽤 까칠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교실에 있는 열여섯도 같이 웃었다. 그 까칠함에 몇몇은 익숙해졌고 몇몇은 아직 아닌 듯 보였다.
작년 겨울 프라하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트램이나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맥주를 마시러 레스토랑에 가면 내 맥주만 쾅쾅 내려쳐서 놓는 것 같고, 마트를 가면 계산하시는 분이 잔돈을 흩뿌려 주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사소하게 다 바늘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느낀 그 까칠함은 체코에 정을 붙이기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 열여섯도 까칠함을 겪어봐서 웃는 거겠지 싶어 다들 웃는 웃음을 따라 같이 웃었다.
이후 일주일에 두 번씩 나를 포함한 열여섯 명의 이방인들을 만난다. 이들의 목적은 체코에 살며 체코 사람과의 통합이겠다만, 되려 이방인들끼리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체코어 수업을 가면 꼭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웰 컴! 이 지독하게 어려운 체코어의 세계로!
그럼 대부분은 따라 웃고 답한다.
웰 컴!
서로의 환영 속에서 똘똘 뭉쳐지는 그들이었다. 통합되기 위해 통합으로 힘을 내는 모순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