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레타: Where are you from?

by 두루주

해외에서 살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정확히는 다른 인종과 섞어 살다 보면 듣는 질문이다. 그것은 바로 Where are you from?이다. 한국에 살 때는 서로의 국적을 물을 기회가 없어 내가 한국인인지도 잊은 체 살았다. 하지만 프라하에서 살다 보니, 내게 무턱대고 차이나? 도쿄?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코리아라고 답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김치를 사러 한인마트를 가는 나를 보며 새삼 한국인임을 실감하기도 했다. 인생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가능한 감각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코리아라 답한다.


하지만 여기 그 질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비올레타이다. 그는 지난 글 <방탄소년단 어디 계세요? 절이라도 하게요.>에 등장했던 주인공이다. 방탄소년단이 맺어준 인연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비올레타는 나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해 더 많이 궁금해하며 한국을 향한 노력을 어떠한 형태로든 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직 열세 살이라 스스로 돈을 벌 수도 없고 그 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살 수도 없고 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가 티브이에 나오는 외국인처럼 한국어 실력을 출중히 늘어놓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범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어느 정도냐면, 매번 숙제 외의 무언가를 해서 가지고 온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딱 숙제만큼 해가는 것도 버거워 울상이었던 아이다. 미루고 미루다 과거의 내가 미워질 즈음 서서히 움직여서 간신히 해가는 것이 숙제였다. 그런데 늘 비올레타는 숙제 뒷 면에 스스로 한 과제를 보여준다. 저번에는 한국어로 쓴 일기를 가져왔다. 막 -했어요, -았어요, -었어요 를 배운 참이었다.


일어났어요. 씻었어요. 파스타를 먹었어요. 놀았어요. 한국어 공부했어요. 이를 씻었어요. 잤어요.


아직 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글씨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해서 하나의 파도를 보는 듯했다. 그 파도를 타고 있는 글을 따라가면 일어나서 잠들기까지의 일상이 보인다. 나는 슈퍼 그레잇을 외치며 일기 옆에 별을 다섯 개 그린다. 그리고 이를 씻었어요 옆에 빨간펜으로 닦다 라고 적는다. 그럼 눈치 빠른 비올레타는 이를 닦았어요 라고 고친다.


나는 속으로 비올레타의 언어감각에 감탄한다. 한편으론 숙제를 만들어서 해 올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I don't like the question 'where are you from?'. I don't know what to say. 저는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이 싫어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비올레타가 말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게 왜 싫다는 거지? 첫 번째는 자연스레 드는 의문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이미 내가 비올레타에게 where are you from을 열댓 번은 물어봤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국어 수업을 시작할 무렵 자기소개를 연습하며 서로에게 국적을 최소 열 번 이상은 물었던 기억이 있다.


"Oh... I see. Do you have any reason for that? 그렇구나, 무슨 이유라도 있어?"

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비올레타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는 그의 부모로부터 출발한다.


비올레타의 어머니는 헝가리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헝가리에서 온 여자와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는 스페인에서 서로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사랑을 했다. 그 사랑의 결실로 예쁜 아기가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꽃 바이올렛에서 따온 비올레타였다. 그렇게 헝가리 국적의 여자와 이탈리아 국적의 남자 스페인 국적의 아기는 한 가족이 되었다. 그 가족은 지구 안에서는 모든 곳이 나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인도네시아로 떠나 사업을 했다. 그 아기는 인도네시아 누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기가 걸을 때 즈음, 엄마는 생각했다. 인도네시아가 여자아이한테는 좋은 곳이 아니구나. 엄마는 이슬람교 국가에서 여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보며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3년을 살다 다시 스페인에 넘어왔다. 스페인에서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들 가족은 바르셀로나 밑 해변가에서 이후 십 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다.


한편 비올레타는 학교에 갈 때마다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 사람끼리 만나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는 어딘가가 달랐다. 그것을 알 때는 이미 몇 번의 놀림을 받은 후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비올레타는 스스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스페인 사람인데, 집에서는 때론 헝가리어를 듣고 이탈리아식 파스타를 먹었다. 인생의 사분의 일은 인도네시아에서 보냈기에 그것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비올레타는 where are you from에 싫증이 났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탓이다. 그 대신 차라리 who are you가 나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소개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나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So I don't like the question. I'm not from somewhere. I'm just me.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이 싫어요. 저는 어디에서 온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저예요."


이야기를 마친 비올레타는 말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내 앞에서 비올레타는 계속해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한국어로 일기를 쓰고 한국어로 된 드라마를 보고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고 노트북 자판을 한글로 바꿨다. 어쩌면 이것 만큼은 비올레타가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숙제를 만들어서 해오는 그 놀라운 힘의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나는 종종 초록색에 집착하는데,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분명히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좋다가도 싫고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초록색만큼은 흔들림 없이 좋아한다. 그래서 내 곁에 초록색 물건들을 모아둔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 흔들리는 나에게 위안이 된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사랑은 나의 초록색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짐작해보았다.


Where are you from이나 Who are you 나, 나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는 세상 한편을 잃은 듯 당혹스럽다. 그럴수록 나는 초록색을 모은다. 비올레타는 한국어를 공부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모으고 공부한다. 얼마나 모으고 얼마나 공부를 해야 조금은 스스로에 대해 알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열세 살의 비올레타와 스물여섯의 나는 알지도 못 하고 초록색과 한국어를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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