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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Sep 25. 2020

13. 거리의 사람들(下)

<12. 거리의 사람들(上)> 편에서 이어집니다.


 거리에서 일을 하며 하루에 꼭 한 번 마주치는 이는 버스기사님이었다. 이들은 나의 출근길과 퇴근길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일 분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모든 이들의 발걸음이 동동거릴 것이라 이들의 시간 개념은 무엇보다도 칼 같았다. 나는 이분들의 수고 덕에 매일 아침 늦지 않게 출근을 했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앞좌석에 붙어 앉아 기사님 시야로 달리는 풍경을 바라봤다. 그러다 기분 좋은 장면을 목격했다. 마주오는 버스의 기사님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내가 탄 버스의 기사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둘은 서로를 지나치는 짧은 순간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내게 건넨 인사도 아닌데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내가 거리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사람이 되고부터 한 가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근무 시간 내내 동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일할 적에는 한 공간 안에서 부딪히며 일하는 것에 익숙했거늘, 거리에 나와 돌아다니며 일을 하니 동료 하나 없이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 역시 장단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명백한 단점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 거리를 배경으로 일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었다. 


한 달간 지나치며 본 이들은 모두 혼자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거나, 혼자 돌아다니며 관광버스를 홍보하거나, 혼자 운전을 하거나, 혼자 작은 청소차를 몰았다. 물론 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동료의 빈자리를 거리의 사람들로 채웠다. 이를 테면, 길을 지나며 매일 같이 보는 이들에게 손인사나 눈짓을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한 달 사이 거리의 문화에 익숙해져 조금씩 그들을 내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오지랖 가득한 시선으로 남의 인사를 내 것인 양 받아먹고 나니 새삼 거리로 나온 것에 실감이 났다. 다음 날부터 조금 더 당당하게 거리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투어를 시작하는 장소인 시민회관 앞 건물에서는 관광버스를 홍보하는 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대다수가 교환학생으로 프라하를 잠시 방문한 학생들이었다. 홍보하는 일이 업이라 그런지 한 번 인사를 건네면 말꼬리를 잡고 장시간 수다를 떨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안녕하세요'를 포함해 기본 5개 국어 정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주로 상대하는 잠재 고객들이 모두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과 각 유럽 국가에서 여행 오는 사람들, 그 밖에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이들이니 간단한 각 나라의 인사말 정도는 유창히 해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웨어 알 유 프롬? 아 코뤠아! 안녕하세요! 라며 능숙히 나를 반겼다.


시장을 지나칠 무렵에는 그 앞에서 굴뚝 빵을 파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들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늘 뻥 뚫린 부스에서 김이 나는 빵을 구웠다. 그래서 여름에는 김 앞에서 일하느라 땀을 흘렸고 겨울에는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몸을 살짝 떨었다. 이들에게 굴뚝 빵 부스는 작은 실내였지만 동시에 거리의 한가운데이기도 했다. 이들은 오래 서있어야 하는 만큼 추위와 더위에 더 민감히 반응했다. 그래서 늘 그곳을 지나칠 때면 날씨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유독 추운 날에는 내게 빵 한 조각을 떼어주며 먹고 일하라고 했다. 그러면 손사래를 치다가도 덥석 받아먹는 맛에 즐겁게 그곳을 지나쳤다.


오후에는 매일같이 지나치는 골목에서 노숙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분은 강아지 한 마리를 늘 품에 안고 담요를 두른 채로 골목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도브리 덴. 호빵맨처럼 생긴 동그란 분의 동그란 미소였다. 하지만 그분이 웃으며 건네는 인사에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빠른 걸음을 쳐서 피했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는데 한 달간 그렇게 도망치듯 지나가다 일 년 내내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이었다. 도브리 덴. 인사에 처음으로 화답을 했다. 그분은 더욱 웃으며 '헤즈키 덴'하고 말했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뜻이었다. 이후로 매일 같이 그곳을 지나칠 때면 좋은 하루 보내라는 덕담을 들었다. 가진 것은 강아지와 담요가 전부여도 다른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마음 씀씀이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카를교를 건너며 다리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이 사람은 오후에 있을 공연을 홍보하는 이였는데 늘 카를교에 사람이 많아 여행자들 사이를 비집고 어깨를 치여가며 일을 했다. 그 때문에 늘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와중에 나를 발견하면 꼭 악수를 빼먹지 않고 해 주었다. 이후 체코어로 무어라 무어라 빠르게 쏟아냈는데 그 역시도 정신이 없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확실히 이 사람이 지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치여가며 붐비는 곳 한 복판에 서서 일한다면 5분이 안 되어서 기운이 쪽 빠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저 기운은 어디서 나는 것인지. 왜 악수 한 번에 나까지 기운을 돋게 하는지. 알쏭달쏭해하며 카를교를 지나쳤다.


이렇게 내가 여행자들을 줄줄이 달고 프라하 시내와 프라하 성을 누비며 돌아다니는 동안, 이리저리 마주하고 인사하는 동료는 족히 열 명에 가까웠다. 이 곳에 담지 못한 많은 이들도 크고 작은 눈인사나 손인사를 해주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청소를 하고 빵을 굽고 살기도 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아 거리를 뚜벅뚜벅 힘차게 걸었다.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는 이들은 유년을 게을리 보내 그에 대한 벌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루를 성실히 몸과 마음으로 채워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하루에 덕담을 줄 수 있는 마음도 있고 지치지 않는 힘으로 묵묵히 걷는 몸도 있다. 그들 덕에 흐르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제 직업의 세계를 조금 알게 된 나는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누군가의 수고가 말없이 채워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밖이건 안이건 노동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몸과 마음의 씀씀이는 참 고귀하다. 더우나 추우나 나는 그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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