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유목민들은 옷장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겠지. 매일 옮겨 다녀야 하니까 집도 없었을텐데 옷장이 웬말이야. 문득 내 옷장을 바라보며 역사책에서 본 유목민들을 떠올렸다. 유목민들은 어떻게 여기 저기 옮겨다녔으려나. 그들의 이동생활도 궁금해졌다. 무엇이든 과장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요즘 상황이 유목민 같다고 느껴서였다. 떠날 채비를 항시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를 설명하기 제격인 듯 했다.(다시 말하지만 과장이 좀 심한 편이다.)
여행업에 종사하던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업을 잃고 직장에서 발급해준 비자마저 만료될 위기에 놓였다. 물론 만료되기 전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비자를 연장할 수 있으나 이것이 워낙 어려운지라 언제든지 한국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염려가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의 부피를 눈대중으로 재게 만들었다.
방은 내가 처음 이사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어찌 이 년이나 살았는데 그간 살림이 늘어나지 않았다. 옷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그대로였다. 가장자리가 터진 여름 운동화와 때가 껴서 이젠 회색이라고 해도 믿을 겨울 운동화를 봉지에 담아 문고리에 걸었다. 2년 사이 새로 산 신발은 한 켤레, 선물받은 신발이 한 켤레였다. 사계절 옷들도 이 곳에 올 때와 그대로였다. 그래서 버릴 것도 특별히 챙길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팀장님한테 선물받은 패딩 하나 정도가 새로 생긴 외투였다. 이년 동안 산 옷은 스카프 한 장과 모자 세 개 그리고 여름 옷 조금이 전부였다.
한국에 간다면 이사짐을 택배로 부쳐야 하나 고민하던 것들이 우스울 만큼 챙길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새삼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살던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있을 적 나는 무엇이든 많이 가지는 사람이었다. 특히 머리만 쏙 넣으면 상의와 하의가 다 해결되는 원피스를 주로 사고 모았다. 봄과 가을에 입을 원피스는 하도 많아 한 번씩만 입고 다시 안 꺼낸 것도 있었다. 오죽하면 엄마가 어느 날 전화해서 원피스를 무료나눔해도 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의 물음에 나는, "딸 영영 프라하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벌써 내 물건 정리 해?!" 하고 나무랐다.
옷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만나고 다녔는지. 일주일에 약속이 없는 날을 손에 꼽기 힘들 정도였다. 어쩌다 하루라도 친구들을 안 만나는 날에는 집에 콕 박혀서 잠을 내리 잤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만날 친구들과의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매일을 피곤하면서도 무엇이든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달력에 일정을 꽉꽉 채워넣었다. 옷장도, 하루 동안 할 일도, 만나야 하는 사람도 무엇이든 터지도록 많이 가지고 있던 다다익선의 대표주자였다. 그런 내가 이 년 째 그대로인 옷장을 보니 옷장의 주인이 과연 내가 맞나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년 째 물건은 그대로지만 나는 많이 바뀐 듯 했다. 같은 옷을 자주 입고, 적은 사람을 자주 만나고, 오늘만큼의 일을 하고, 진심인 말만 뱉었다. 그 덕에 덜 피곤하고 더 쉬어가며 살고 있다. 한때 체코병에 걸려서 모든 이로운 점은 다 체코에 살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때는 체코의 공기가 좋아 이젠 피곤하지 않은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다시 떠날 채비의 마음으로 옷장을 바라보니 덜 가져서 덜 무거운 마음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체코에 산다고 물욕이 없어졌다면 거짓말이다. 여전히 가지고 싶은 것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저 언제든 떠나야 하기 때문에,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짊어지기 두려워 안 사 버릇하고 작별이 두려워 많은 이들과 친해지길 그만 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가벼운 마음을 들게 할 지 몰랐다.
'(...)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리가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 입니다. 그러니 다리를 '더하기의 통로'라 한다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건 얻어낸 걸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줄여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 인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글 중에 이동진 평론가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관해 쓴 것이다. 평론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더하기가 아닌 빼기일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가 줄여 나가야 하는 것을 훌훌 털어야지 인생의 도돌이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답이 없어서 무엇이 더 내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더하기의 삶을 내리 살다가 이년 간 빼기의 삶을 산 나는 현재의 유목민같은 옷장이 싫지만은 않다. 삶이 하나의 여행이라면, 언제라도 떠날 지 모른다는 이 마음가짐이 언제든 죽을 지 모른다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줄 때도 있다. 영원한 정착과 영원한 소유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더하기와 빼기 사이에서 옷장을 채우고 비우며 유목민의 삶을 상상한다. 내 인생의 옷장에는 무얼 담아야 하나, 무얼 빼야 하나,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떠나는 날이 다가온다면 나는 그 여행을 후회없이 마치려나. 어느 부족에 섞여 말을 타는 상상을 하며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