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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Apr 03. 2021

덕질의 역사 上

뒤늦게 아이유 덕질을 시작했다. 내 인생 덕질의 역사는 흔치 않다.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을 품기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욕구에 그리 눈이 밝지 않았던 나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 하면서 그것이 나의 욕구인지 아닌지를 실험하곤 했는데 그 첫 실험 대상이 소녀시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친구들은 둘러앉아 소녀시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소녀시대가 13명인지 10명인지 7명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지만 친구들은 멤버 숫자뿐 아니라 이미 그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고 있었다. 리더는 태연인 듯했다. 


나는 태연. 내가 속한 무리의 친구 중 가장 활발하게 아이들을 휘젓고 다니는 친구가 외쳤다. 즉시 눈치게임을 하듯 아이들 모두가 나는 뭐 나는 뭐 하며 외치기 시작했다. 암묵적으로 우리는 이제 소녀시대가 된 모양이었다. 흡사 두더지 게임을 보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나는 누구라고 외쳐댔다. 나는 서현. 나는 윤아. 나는 유리.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대체 그 이름을 어떻게 외우고 있는 것이며 그 와중에 나는 누구라고 해야 하는지를 몰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그때 이제 막 태연이 된 친구는 나에게 '너는 효연 해'라고 말했다. 나는 효연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효연이 되었다. 효연은 춤을 잘 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 대신 태연, 윤아, 유리, 서현, 티파니, 써니, 제시카, 수영, 효연으로 불렸다. 그리곤 같이 다시 만난 세계를 연습했다. 소녀시대의 다리는 길고 늘씬했다. 그에 반해 이제 막 성장기를 겪고 있는 평균 140cm의 우리는 다리를 세게 위로 차올리는 안무를 하기에는 어딘가 요목조목한 면이 많았다. 그 안부가 약간은 버거웠지만 영상을 보며 손짓 발짓을 하다 보면 내가 마치 소녀시대의 새로운 멤버가 된 것 같았다. 사랑훼 널 이 느낌 이뒈로~ 그려왔던 헤매이이임의 끝~ 이 쉐상 쏙에서 반복뒈는 슬픔 이젠 안! 녀어어엉! 나는 벅찬 마음으로 가사를 이리 저리 늘여 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기교를 부릴 줄 아는 멋진 가수가 된 기분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친구를 따라 빅뱅을 덕질했다. 친구는 문방구에서 표지에 빅뱅이 있는 브로마이드를 샀다. 표지 속 빅뱅은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뚫어지게 응시하면서도 항상 어딘가 취한 듯한 나른한 어깨와 풀어진 다리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친구는 공격적이고 나른한 빅뱅을 정성스레 오려 책상에 붙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친구를 보며 덕질을 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를 배웠다. 친구는 VIP라고 불리는 팬클럽에 가입을 했다. 돈을 내야 한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왕관 모양의 응원봉을 받는 듯했다. 그것은 어떤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그것을 가진 자에게 드디어 스스로를 빅뱅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친구는 그 응원봉을 소중히 간직했다. 친구의 품 속에서 반짝이는 노란색 응원봉을 보며 덕질이란 그냥 노래를 듣고 부르는 그 이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곤 덕질을 그만두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더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어쩐지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책상을 에프엑스, 소녀시대, 빅뱅, 유키즈, 카라로 도배하는 사이 내 책상은 늘 깔끔했다. 그 책상에 둘러앉아 친구들은 말했다. 야 우리 오빠 진짜 멋있지 않냐. 야 아냐 솔직히 우리 오빠가 더 짱이거든. 아 근데 이번에 나온 신곡은 인정. 나는 그 갑론을박이 오가는 사이 이 편도 들었다가 저 편도 들면서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했다. 그래그래 인정. 맞아 맞아. 


그러며 언젠가 나도 이게 최고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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