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주 Apr 08. 2021

크크와 크크크크

내겐 일곱 살 터울의 사촌언니가 있다. 엄마는 외가댁의 첫째로 아빠는 친가 댁의 막내로 태어나 둘은 만나 나를 낳았는데, 첫째와 막내의 만남 덕에 나는 외가에 가면 꽤 어른 노릇을 할 수 있었고 친가에 가면 막내의 귀여움을 받곤 했다. 물론 내 밑에 동생이 하나 더 있어서 독보적인 귀여움을 뽐내고 이에 대한 반응을 독차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귀여움의 몫을 최대치로 가져야 전체의 절반의 절반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그 귀여움을 사느라 바빴을 때, 일곱 살 터울의 사촌언니는 나를 귀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언니는 나랑 놀아주기를 잠깐, 그의 한 살 터울인 사촌오빠에게로 다시 돌아가 서로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놀았다. 사촌오빠는 큰아버지의 외동아들이며 사촌언니는 고모의 외동딸로 둘은 각자의 집에서 외동이나 사촌이 모이면 꼭 남매처럼 붙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어린 내가 봐도 꽤 견고해 보였으며 어쩌면 둘이 남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죽이 잘 맞았다. 나는 그 사이에 끼는 것을 애초에 포기했다.


스무 살과 스물일곱 살의 차이도 엄청나다지만 한 살과 여덟 살의 차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말을 하지 못 하는 자와 8년 치의 세상 물정을 경험한 자의 으스럼까지 포함되어 다른 문명의 사람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좀처럼 언니하고 말을 섞는 일은, 언니를 이해하고 서로의 농담으로 웃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아빠는 그런 언니를 싫어했다. 못 마땅해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친척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 '쟤는 싹수가 없어서 원'하고 혀를 찼다. 부모를 비판할 능력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가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줄 알아 그때부터 언니를 '싹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언니가 실은 외동이 아니었음을, 언니는 고모의 둘째 딸이었으며, 어릴 적 사고로 고모는 첫째 딸과 남편을 잃어 세상에 피붙이는 그와 자신의 둘째 딸만 남았음을, 그래서 무엇이든 애지중지하여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것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언니와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꽤 된 다음이었다.


아빠와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면서 친가와 연락이 끊긴 후였다. 그 무렵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기억이 희미한 어느 순간부터 후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한 번은 그리워도 하고 한 번은 원망도 하는 사이, 아빠가 집에 오는 순간 느껴지는 불편함에 그만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이 상황을 받아들였던 때였다. 묘연하게도 언니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이맘때 즈음이었다. 아마 언니 역시 이제는 나와 말이 통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연락했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고등학생인 내게 학업이 힘들지는 않은 지 물었다. 그 맘때 언니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언니는 재수를 한 이력이 있어서 학업의 실패와 성공의 역사를 남들보다 짙게 경험했다. 나는 이런저런 고충을 털어놓으며 생각보다 공부가 어렵다고, 중학교 때는 내가 하버드에 갈 줄 알았다고, 세상을 조금 알 때만 할 수 있는 허풍이 얼마나 우습고 귀여웠는지를 털어놓았다. 그럼 언니는 유독 ㅋㅋㅋ를 많이 붙이면서 답을 했다. ㅋㅋㅋ그렇지. ㅋㅋㅋ그렇구나. ㅋㅋㅋ맞아. 나는 키읔 세 개에 언니의 분위기가 약간 활발해졌음을 느꼈다. 스물넷이 되면 세상이 조금 재밌는 모양이었다. 언니는 웃기지도 않은 말들에 키읔을 동원하며 맞장구를 치다가 대화를 마무리했다. 언니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언니와의 연락은 그 후로 뜸하다가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로 몇 번의 안부를 물을 뿐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언니처럼 ㅋㅋㅋㅋ를 남발하며 얘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활자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언니는 이십 대의 끝자락으로 곧 삼십 대가 되는 시점이었는데, 불과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대학생이 어른인 것처럼 말하더니 내가 대학생이 되니 나를 여전히 아가라며 좋을 때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아, 나에게 여전히 젊음이란 유효함이 살아있단 사실에 안도했다. 


우웅 언니 나 이제 곧 졸업해ㅋㅋㅋ


졸업한다는 사실이 웃긴 지 슬픈 지 나는 잘 모르는데도 크크크를 붙이며 모든 말을 가볍게 말했다.

그럼 언니는 전과 다르게 키읔을 조금 써 가면서 내가 졸업한다는 사실이 불행도 행운도 아니며 그저 하나의 통과의례임을 깨끗이 알려주었다.


그렇구나ㅋㅋ 벌써 졸업이네 


나는 키읔이 두어 개 정도 줄어들었다고 해서 이렇게 경직된 말투로 느껴질 수가 있는지, 아니면 언니가 그 세월 사이 즐거움을 조금 잃어버린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건조해지는 것인지 도통 영문을 몰라하며 또다시 그 말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응ㅋㅋㅋㅋ곧 졸업해. 이상하다!


걱정 마 ㅋㅋ 


우리는 크크크크의 가벼움과 크크의 건조함 속에서 또다시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 이후의 말들은 기억에 남지 않고 여전히 언니와는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거리감만이 남아 다음 연락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되었다. 내가 마흔 즈음이 되고 언니가 마흔 일곱 즈음이 되면 그때서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들을 구사하게 될지 그것은 모를 일이었으나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언니의 세월 만치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부를 전하고 들을 때마다 느낀다. 


점점 ㅋㅋㅋ보다 ㅋㅋ를 쓰게 되는데 언니는 이제 무어라고 말을 할까. ㅎㅎ라고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안 붙이고 온점을 냅다 찍을까. 그것을 보며 나는 또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덕질의 역사 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