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 페이지를 들어왔다. 알림이 떠서 보니 브런치 팀으로부터 온 '돌연 작가님이 사라졌어요 ㅠㅡㅠ'라는 메시지였다. 마지막 글이 8월이었으니 돌연 사라졌다는 말이 맞겠다. 갑자기 글을 쓰는 것이 무서워져서 한동안 쓰지를 못 했다. 한 문장을 쓰고 다시 지우고, 한 문단을 쓰고 다시 지우고, 쓰다 보니 부족한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서 누군가의 문장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쓰지 않을 좋은 핑계를 만들어 잠시 쉬다 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 수업을 한다. 아이들에게 글감을 주고 글을 쓰게 한다. 그런데 그 풍경이 마냥 조용하고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글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준다. 처음에 아이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점점 하나둘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펼치는 장이 열린다. 그때 작가는 이야기 시간을 중단하고 글을 쓰게 한다. 작가들의 내면세계 안에서 이야기가 끓어올라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 그때 글을 써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프라하에 처음 넘어오고 나서는 그런 욕망이 끓다 못해 넘쳤다. 내가 유럽에 있다니! 그것도 프라하에 살다니! 가이드로 일을 하다니! 일을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도 다 만나 보다니!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다니! 그 친구들의 이야기는 또 이렇게 신선하다니! 인종 차별을 당하다니!...! 놀람과 감탄의 연속들. 충격과 배움의 연속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참 굴뚝같았는데, 프라하 생활 2년째가 되던 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도 하지 못 하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내 안으로 침잠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2년째를 보내고 3년째가 되는 해인 2021년. 그 해의 11월이 되어서야 돌아보니 참 정신이 없이 바삐 지나갔구나 싶다. 비자 문제 해결하랴, 월세 내랴, 이사 가랴, 한국에서 온 친구 맞이하랴, 큰 대소사들이 많았던 시간들. 특히 최근에 번역회사에 채용이 되고 남자 친구랑 같이 살게 되며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라고 할 큰 일들을 겪었다. 이제야 자리를 잡으니 그간의 이야기들을 조잘조잘 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3개월 전 글쓰기가 두려웠던 그때로 돌아가서, 무엇이 두려웠나 생각해보면. 잘 쓰고 싶은데 잘 써지지 않는 것이 두려웠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 두려웠다. 딱히 쓸 것도 할 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조금 공허해지는 것이 싫어 잠시 쓰기를 멈추었나. 그랬던 것 같다. 그 시기를 지나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요즘도 가끔은 공허하고 가끔은 재미난 일들을 겪으며 프라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미난 순간과 좋은 순간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순간들을 잘 기록하고 싶다. 즐거운 추억은 참으로 보물이기에. 다들 잘 지내고 계셨기를!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