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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May 21. 2020

03. 구구절절의 힘

플랫셰어 구하는 방법

세상에는 많은 격언들이 있다. 종종 어떤 격언은 시대착오적이거나 과한 미국식 자기 계발서와 같아서 마음에 와닿지 않지만 반면 어떤 격언은 마치 주술처럼 되뇌면 되뇔수록 영험한 힘을 갖게 만든다. 가령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처럼 말이다. 구절은 단순한데 되뇔수록 내 행동과 생각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 영검한 그것은 바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간절함이란 흔히 말하는 '꿈', '자아실현'과는 꽤 거리가 멀다. 내가 말하는 간절함은 '꼭 이뤄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유럽 한복판 오줌 마려운데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상황, 기차 출발 5분 전 아직 플랫폼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 그리고 지금 내 상황. 프라하 도착 일주일 만에 내가 살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 말이다.


나는 한인 민박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집을 보러 다니며 점점 초조해졌다. 그만큼 본능적인 간절함은 더욱 차올랐다. 메시지를 이렇게 보내보고 저렇게 보내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메시지에 간절함을 담기로 작정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현주라고 합니다. 그 방탄소년단의 나라. BTS. 아니면 연아킴 아니면 싸이!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으로 한국을 소개했을까...) 저는 성격이 활발하고 한국어가 모국어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데에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프라하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월세도 꼬박꼬박 낼 수 있고 청소도 깔끔하게 잘 하기 때문에 아파트도 더럽히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파티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에 친구를 데려와서 지저분하게 놀고 안 치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평소 집에서는 조용히 지내기 때문에 폐 끼칠 일도 없을 겁니다. 꼭 답장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편한 시간 아무 때나 집을 보러 갈 수 있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진심으로. 현주 드림.'


구구절절. 이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정말 모든 매물에 내 상황, 성격 소개, 한국에 대한 소개를 구구절절 쓰기 시작했다. 필요한 경우엔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고 비흡연자라는 나의 장점을 강력 어필했다. (셰어 메이트를 구할 때 애완동물을 데리고 있거나 흡연할 경우, 같이 살기가 어려워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간절함이 조금은 닿았을까. 아니면 그 영험한 주술적 능력 덕분일까, 그제서야 조금씩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헤이 이 날 집 보러 올래?"

"오케이! 이 날 집 보러 오세요"


다섯 명 정도에게서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고 하나둘씩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집을 보러 다녔다. 언젠가 자취를 하게 되면 꼭 써먹어야지 하고 저장했던 자취방 체크리스트를 활용했다. 그 첫 자취가 프라하가 될 줄은 몰랐지만. 체크리스트에는 변기 물 내려보기, 불 켜기, 가스레인지 켜보기, 벌레 나오는지 확인하기, 소음 확인하기, 따뜻한 물 나오는지 체크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세였다. 보통 매물이 올라오면 월세에 대한 안내도 함께 공지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값이 방 값만 지불하는 것인지 수도세, 전기세, 와이파이(모두 합쳐서 Utility라고 한다)가 포함된 가격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보통 유틸리티 값은 한 달 10만 원, 15만 원 선이 평균이다.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월세가 유틸리티 포함 50만 원 선이었기에 그 선에 맞춰 집을 선별했다.


이후에는 프라하 내 위치를 고려했다. 사실 프라하는 파리만큼이나 구역 별로 치안이 심각하게 차이 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모든 구역이 안전하다. 다만 통근을 위해서 프라하 1구 근처에 있는 프라하 3구, 5구, 6구, 7구에 있는 숙소를 우선으로 선별했다. 또한 나는 뚜벅이이기에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유심히 살폈다. 바로 앞에 지하철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트램 길이 깔려있다면 몇 번 트램이 몇 분 간격으로 지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트램과 지하철까지 거리가 꽤 있는 숙소라면 그 사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있는지, 평일과 주말에는 몇 분 간격으로 버스 운행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집 주변 편의시설 유무까지 점검하면 더욱 좋다. 1년 이상 장기 거주를 한다면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요리해서 먹는다. 게다가 살림을 새롭게 채울 때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도 사도 끝이 없다. 그래서 집 주변에 편의시설이 모여 있으면 이용하기 편하다. 특히 ALBERT와 TESCO 같은 대형마트가 주변에 있는 경우라면, 장을 보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위치와 가격 및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다면, 마지막으로 가구가 있는 집인지 없는 집인지를 체크한다. 플랫 셰어는 중장기 대여이기 때문에, 단기로 대여할수록 가구가 있는 집이 좋다. 보통 Furnished라고 한다. 이 경우 월세가 다소 비싸지만 가구를 사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다. 반면 2년 이상 장기 대여인 경우, 가구가 없는 집을 구해서 직접 장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Unfurnished라고 하며 이 경우 월세가 더 저렴하다. 


위에 언급한 내용에 따라 숙소를 선별했다면, 체크리스트에 맞춰 변기 물도 내려보고 불도 켜보고 집 내부의 설비들을 점검하면 된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명심해야 한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물을 올린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따라서 운도 따라주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다섯 군데 이상은 뷰잉을 하고 확답을 기다려야 한다. 다만 너무 걱정하지 말 것. 간절함 A.K.A 구구절절에는 힘이 있다. 


실제로 나중에 내가 메이트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다들 구구절절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중에서 가장 간절해 보이는 사람 또는 나랑 생활 패턴이 맞을 것 같은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단 그렇게 하게 된다. 간절함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끌리는 마성의 힘이 있다. 


*구구절절의 짧은 팁

1. 메이트의 성향을 파악한다.-파티를 좋아하는지, 조용한 성격인지, 청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 등등

2. 나랑 맞는 메이트의 경우, 내 성향을 강력 어필한다.

-나랑 성향이 맞지 않는 메이트에게 일부러 거짓으로 나를 어필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살다 보면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거짓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은 되려 나에게 손해되는 방법이다.

3. 월세 납부, 청소,반려동물, 흡연, 파티(파티 열고 친구 초대)와 같이 같이 살면서 부딪힐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명시해서 소개 글을 적는다.

4. 뷰잉 후에 마음에 드는 숙소라면 집주인 혹은 메이트로부터 확답 받을 날짜를 정확히 잡는다.

-집주인으로부터 언제까지 답을 주겠다고 기한을 정하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다른 숙소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팁이니 개인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반영하길 바랍니다. ^^)


**다만, 주의할 것. 그만큼 사기꾼들도 그 마력에 이끌린다는 것. 집을 보러 가는데 돈을 요구하거나 계약서를 쓰기도 전에 돈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거래이니 절대로 수락해서 안 된다. 특히 체코를 비롯한 유럽은 '페이퍼'를 중요하게 여긴다. 구두계약은 없으며 모든 계약이 서류상으로 처리된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구두계약을 하자며 돈을 요구할 시 거절해야 한다. 간절해도 신중해야 한다. 


모태 겁쟁이인 나는 DNA에 내재된 겁 덕분에 괜찮은 집을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그날은 하루가 참 짧았다. 겨울이라 해가 4시만 되면 사라졌고 유난히 바람은 차가웠다. "어서 와, 프라하는 처음이지?" 언젠가 유행했던 이승철 짤(?)이 생각나던 밤이었다고 한다. 한편, 이제 막 숨을 돌린 나는 대중교통권을 만들러 가는데..... "한 달이 아니라 일 년에 10만 원이라고?" 경기도에서 경기도를 가는데 한 달 평균 12만 원을 쓰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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