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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May 26. 2020

04. 뚜벅이들의 천국

프라하에서 대중교통 이용하기

나는 뚜벅이다. 내가 가진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다. 내겐 다들 있다는 운전면허증도 없고 내 손으로 핸들을 잡아본 기억은 아주 어릴 적 아버지 무릎 위에서뿐이다. 아빠는 버스 운전을 하셨다. 그래서 매번 아빠는 나에게, "도로 위에 '미친 사람들'이 많으니 너는 절대 운전하지 말아!"라고 큰소리를 치셨다. 그 덕의 나는 자연스레 뚜벅이가 됐고 앞으로도 몇 년간은 뚜벅이일 예정이다.


뚜벅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 튼튼한 다리, 둘째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셋째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대중교통이다. 두 다리가 힘들다면 잠깐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뚜벅이에게 큰 힘이 된다. 값까지 싸다면 더욱 좋다.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잘 마련되어 있지만 경기도에서 경기도를 가는데 한 달 평균 12만 원을 썼던 나는 지갑이 텅텅 비어가는 뚜벅이었다. 이 돈을 모아 차를 샀다면 더 거지가 됐겠지. 그래 열심히 걷자 굳세어라 뚜벅이들. 여러 의미로 뚜벅 인생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였다.


그런 내게 프라하는 뚜벅이들의 천국이었다. 프라하는 전 세계에서 대중교통이 잘 마련되어 있는 도시 중에 하나이다. 버스, 트램, 지하철, 보트 심지어 푸니쿨라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하나의 티켓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버스와 지하철은 우리나라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에 유모차를 싣는 칸이 따로 있다는 것과 지하철은 호선이 단 3개뿐이라는 것이다. 지하철 A선, B선, C 선은 프라하 시내를 다 연결한다. 지하철은 프라하 시내를 움직일 때, 거리와 시간 대비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교통수단들인데 트램을 타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하철 노선도와 버스 내 휠체어 및 유모차를 위한 공간


트램은 도로 위에 깔린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전차로 흡사 땅 위에 있는 지하철 같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트램이 있는 도시를 많이 볼 수 있지만 프라하처럼 골목골목이 모두 트램으로 연결된 곳은 찾기 힘들다. 지도로 보면 트램이 가는 길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

트램 노선도


앞서 언급한 지하철 노선도와 함께 트램 노선도가 갈색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트램은 중심부를 기준으로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트램 하나만 타도 중심부에 있는 웬만한 관광명소는 모두 지날 수 있으며 더불어 트램에서 보는 프라하 풍경들까지 즐길 수 있다. 창밖 풍경이 예뻐서 그 풍경을 보는 맛으로 트램을 탈 때가 많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트램의 가장 큰 장점은 야간에도 운행된다는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는 야간에 끊기지만 트램은 24시간 내내 운행된다. 한국서 살 때 종종 늦게까지 친구와 놀다가 버스와 지하철이 끊겨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 택시를 탄 적이 여럿 있다. 하지만 프라하에선 야간 트램을 타면 된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야간 운행이니 만큼 배차시간이 길어서 잘 맞춰 타야 한다는 점. 그리고 야간에 트램을 타면 술에 취해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밤중에 취객과의 동행은 꽤 아찔한 경험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며 트램을 찾는다.


보통은 이렇게 버스, 지하철, 트램을 이용한다. 하지만 프라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교통수단이 남았다. 보트와 푸니 쿨라이다. 


보트는 이곳에서 ferry라고 부르며 총 6개의 보트 노선이 있다. 프라하의 젖줄이라 불리는 '블타바'강을 따라서 p1, p2, p3, p5, p6, p7 노선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p4는 없다. 혹시... 우리나라처럼 죽을 사와 연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각각의 노선 중에 p1과 p2는 계절에 상관없이 1년 내내 운행되며 p3~7 노선은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행되는 시즌제 노선이다. 이 노선들 중에서 특히 p1와 p2은 프라하 동물원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프라하에 여행을 왔다면, 혹은 프라하 한 달 살기 또는 장기 살이 중이라면 꼭 한 번 보트를 타고 동물원을 가보길 바란다.


보트 노선도와 보트 정류장


마지막으로 노선은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타는 재미가 가득한 푸니쿨라가 있다. 프라하의 푸니쿨라는 프라하 시내와 전망대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다. 프라하의 전망대는 페트르친(Petřín) 타워이다. 멀리서 보면 꼭대기에 있는 에펠탑이나 혹은 작은 남산타워처럼 생겼다. (하단 오른쪽 사진 참고) 이 페트르친 타워까지 가기 위해서 꽤 높은 경사를 올라야 하는데, 이때 걸어서 이동하는 대신 타는 교통수단이 바로 푸니 쿨라이다. Újezd 역에서 푸니쿨라를 탑승하면 타워 바로 옆에 위치한 정류장에 도착한다. (트램 9번, 12번, 15번, 20번을 타면 탑승 역에서 내릴 수 있다.)


푸니쿨라와 페트르친 타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맨 처음 푸니쿨라의 동력이 물이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푸니쿨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두 개의 푸니쿨라에 차례로 물을 채워놓고 배수하며 순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물 낭비가 심하고 효율적이지 못하여 나중에 전기푸니쿨라로 대체되었다. 아무렴 푸니쿨라가 물로 움직이든 전기로 움직이든, 타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성이 낮을수록 특별함은 배가 된다. 그래서 푸니쿨라를 타다 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기보단 여행을 하러 온 기분이 물씬 난다. 장기 여행으로 잠시 지쳤다면 혹은 긴 타지살이로 다시 도시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프라하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페트르친 타워를 가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프라하에서 두 다리와 교통 티켓으로 걸어간 뚜벅 인생은 꽤 재미나다. 탈 수 있는 옵션이 많아서 대중교통을 맘껏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격이 싸다는 것도 한몫한다. 프라하 교통 티켓은 단기 교통 티켓과 장기 교통 티켓(카드)로 나뉜다. 프라하에 여행을 와서 대략 일주일 정도를 머무는 것이라면, 교통카드를 만들 필요는 없다. 필요에 따라 낱장으로 판매하는 단기 교통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하단 참고) 반면, 한 달, 6개월, 1년 이상 장기로 거주하는 경우 카드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장기 교통 티켓(카드)은 '리타츠카'라고 부르는 교통카드이다. (리타츠카 홈페이지 https://www.pidlitacka.cz/home


프라하 교통 티켓 (단기)


-프라하는 교통 티켓을 사용시간 단위로 판매하며, 사용 시간 내에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티켓 종류별 가격은 하단 표 참고

*참고: 1czk = 약 50원  

출처 https://pid.cz/en/travelling-around-prague/?tab=1


프라하 교통카드 리타츠카


-단기와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기간에 따라 티켓 종류가 나뉜다.

-학생 할인의 경우, 체코에서 공부하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으면 할인이 가능하다.

-리타츠카 발급은 홈페이지 신청 및 수령(https://www.pidlitacka.cz/home), 오프라인 오피스(구글 주소: Jungmannova 35/29 110 00 Prague 1 - Nové Město) 방문 신청 모두 가능하다.

-오프라인 신청 시, 실물 증명사진이 필요하다.


현지인들은 일 년에 15만 원 정도 하는 리타츠카를 발급받아 휴대하고 다닌다. 한 달 평균 10만 원을 지출하던 한국의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카드만 소지하고 있다면 어떤 교통수단이든 상관없이 프라하 내 모든 곳을 버스, 지하철, 트램, 보트, 푸니쿨라를 이용해서 다닐 수 있다. 티켓 검사는 불시에 검표원들이 나타나서 검사를 한다. 만약 무임승차를 했을 경우 벌금으로 800czk (약 4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매번 카드를 들고 다니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정보통신의 발달로 핸드폰에 리타츠카 어플을 다운로드해서 리타츠카를 등록 후 휴대하고 다녀도 된다. (물론... 내가 상상한 21세기에 역병이 돌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역병과 정보통신이 공존하는 21세기에 리타츠카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일 년에 15만 원으로 버스, 지하철, 트램, 보트, 푸니쿨라를 모두 이용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핸드폰 하나 들고 프라하 곳곳을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뚜벅 인생 나름 행복하지 않은가? 한국에 살 때가 떠오른다. 후불교통카드를 이용하던 나는 한 달에 한 번 10만 원가량 교통비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 금액을 만보기처럼 여겼더랬다. 10만 원. 아 이만큼 돌아다녔구나. 12만 원. 좀 더 돌아다녔네. 15만 원. 아니 대체 어딜 쏘다닌 거야? 하지만 프라하에선 일 년에 한 번 리타츠카를 갱신하고 가고 싶은 모든 곳을 누비고 다닌다. 자전거 좀 없으면 어때. 자동차 없으면 어때. 내 두 발로 갈 수 있는 곳은 많고 탈 수 있는 것 역시 많다. 


내 기준에 살기 좋은 도시는 이런 교통 소외가 없는 곳이다. 기본을 영위하는 데 문턱을 낮출수록 모두에게 그 기본은 보장될 수 있다. 단순히 교통권의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버스와 트램에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댈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탑승 시에 기사들과 승객들이 유모차와 휠체어의 탑승을 돕는다. 노인, 임산부, 장애인은 교통권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 내 어떤 사람들이건 상관없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 도시 내에 차별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심어져있다면 그 도시야말로 평등에 가까운 도시이지 않을까 싶다.


뚜벅이들의 천국. 내가 살던 도시 수원 그리고 한국도 걸어 다니는 모든 이들, 휠체어를 타고, 유모차를 밀고, 지팡이를 짚는 모든 이들에게 어디든 두 발 닿는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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