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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루Lee Nov 14. 2023

첫 날이다

신기한 매점

근무 첫날이다. 어제와 다르게 풍성해진 과자 선반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과자를 올려둔 선반에 가격표도 잘 보이게 적어두셨다. 초보 매점 지킴이 당황하지 말라는 배려가 느껴진다.


코로나를 지나며 셀프 계산이 익숙해진 상황이라 초보 매점 지킴이는 크게 신경 쓸게 없다. 냉장고에 음료수만 떨어지지 않게 잘 챙겨 두면 그만 일듯했다. 초보 매점 지킴이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이 많지 않은 것도 좋지만, 사실 제일 좋은 건 따로 있다. 점심도 준다는 것이다. 남이 해 주는 밥은 언제나 옳다. 더 좋은 것은 주 1회 있는 특식을 대타기간 동안 2번이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일이 아주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심각하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조금 어려운 게 있긴하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라면손님이다. 라면이라 해봐야 선에 맞춰 물 잘 부어주고 전자레인지 2분 돌려서 한번 휙 저어 가져다주면 되는 어려울 것 없는 일인데, 간혹 한 번에 사람이 몰릴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게다가 라면 후루룩 먹고 난 후 다시 매점으로 와서 음료수 골라 들고 아까 먹은 라면과 함께 한 번에 계산하려고 하는데, 3-4명이 와서 한 명이 계산한다는 거다. 사이도 좋아라. 무리가 섞이지 않게 나름 잘 메모해둬야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인기 없는 점심메뉴가 나오면 매점이 바빠진다는 말씀은 해 주셨는데 혼자 맞은 첫날인 오늘이 그날이었다. 내가 먹성 좋은 여인이긴 하지만 오늘 메뉴 맛이 괜찮다 싶었건만 라면손님이 많았다. 이렇게 예측이 안되면 내일도 라면 먹으러들 오시려나… 마시려나… … 내일 나는 밥을 받아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스럽다.


몰려드는 라면 손님만큼 당황스러운 게 하나 더 있긴 한데, 바코드 찍는 기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수동계산 시스템이란 것이다. 계산기가 놓여있고, 카드단말기가 놓여있었다. 요즘 암산 할 일이 있나... 띡! 찍고 카드 쏙! 넣으면 계산 끝이었지. 안 하던 암산 하려니 머리가 뽀개질 거 같다. 계산기를 두드렸는데도 계산이 틀렸다. 어디서 틀렸는지 감도 못 잡겠다. 결국 나는 계산 과정이 보이는 핸드폰 계산기를 켜서 계산을 한다.  내가 간단한 계산을 못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무리 지어 와서 한 명이 대표로 계산할 때 좀 헷갈려서 그러는 것일뿐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작은 딸은 몰랐으면 좋겠다. 암산 못한다고 구박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이따위 계산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어제 잠시 보고 이틀째 얼굴 봤다고 다음 주부턴 외상을 어쩌고 하며 농담을 거는 분도 있는데, 어느 정도 리액션을 해줘야 할지 감도 안 온다. 큰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라고 ‘꺼져!’하면 안 돼.”

딸 봐서 참는다. 이 외상 타령하시는 분은 몇몇 분과 같이 오시는데, 매번 올 때마다 인원수가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같은 분들인 것으로 봐서 같은 부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하루에 3번 이상 온다. 담배를 안 피시는 분들이라 군것질을 하러 오는 걸까. 담배까지 피우러 다니고 매점을 하루 3번 오는 거면… … 음… 뭐… 그럴 만하니 그러는 거겠지? 4번째 오시는 분을 발견했을 때 ‘또 왔어요?’ 할 뻔했지만 참아내긴 했다. 대신 눈이 땡그랗게 떠졌다. 내 커진 눈의 의미를 모르고 지나가셨으면 좋겠다. 매상은 소중하니까. 4번째 오신 그 손님은 오늘 사간 캔 커피만 4개다. 잠은 잘 주무실런지 오지랖 센서가 발동한다


인사가 살짝 고민이긴 하다.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니 직원들은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또 ‘네, 안녕하세요.’라고 되묻는다. 지인은 “안녕하세요?”인사하던데, 나는 아는 사람도 아닌데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그냥 ‘어서 오세요’라고 하기로 맘먹었다. 아닌가… 이제 몇 번 봤으니 안녕하세요가 맞나?? 별것도 아닌 걸로 고민하고 있다. 어쨌거나 인사는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




인사 말고는 별로 할 게 없는 매점이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내려와 사오천원씩 서로 내겠다고 아웅대는 훈훈한 손님들이 있는 이 매점이 마음에 든다. 지인이 앞으로도 종종 바빠져서 날 대타로 불러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에 드는 신기한 매점이다.




제목배경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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