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루Lee Nov 15. 2023

둘째 날은 더 흥미롭다

신기한 매점

대타 업무 2일째다.

오늘은 어제 보다 더 한산한 느낌이다. 다들 퇴근 후 불금을 꿈꾸며 업무 부스터를 높이나 보다. 초보 매점 지킴이 체면이 걱정되셨는지 3번 이상씩 오던 분들은 여전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매상을 올려주신다. 



 지인이 업무를 알려주시던 날 점심 식사를 하며 "별거 안 해도 얄미운 사람이 있어, 한 번을 안 사고 얻어먹기만 하는데, 내가 다 얄밉더라. 그런데 한번은 후배들이 농담반 진단반으로 ‘이번 한번만 사주세요. 외상 달아 두고 가져갈게요’하고선 이분 앞으로 외상 걸어 놓고 갔는데 한 달이 지나도 계산을 안 해줘서 애먹었어. 안 되겠다 싶어서 음료 들고 간 사람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결국 각출해서 모아다 주더라" 하셨다. 다행히 그분의 부인은 더한 짠순이로 오순도순 아껴가며 살림 늘려가는 재미로 잘 살고 있다더라며 진저리를 치셨다.          


근무 이틀 만에 그분의 정체는 탈로 난 것 같다. 하루에 3번은 오는데 (3번을 초과하진 않는 것 같다) 계산을 한 번도 안 한 것 같은 분을 발견했다. 오전에는 4명이 오셔서는 "내가 낼게 잔돈 바꿔야 해" 하시더니 무한 통화를 이어가며 돈은 내놓지 않으신다. ‘거스름돈을 먼저 내밀어야 하나... 만원 내실라나.. 얼마 거슬러드리면 되나...’ 생각하는 찰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멋쩍어하며 살짝 민망해하며 "제가 계산할게요." 하곤 카드를 드민다. 그때까지도 계속 통화를 하시다가 나가면서 통화가 마무리된다. 내가 문옆으로 바짝 다가가 고개를 쭉 내밀고 “잔돈 필요하시면 바꿔드릴까요?” 했더니 아니라며 황급히 사라지셨다.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확신을 갖게 된 건 오후에 한번 더 매점에 방문하셨을 때다. 후다닥 오셔서는 음료 몇 개를 올려놓고 ㅇㅇ팀 외상장부가 어딨느냐 했다. 장부 찾아드리고 합계를 불러주니 금액을 적는다. 누계도 적어주십사 했더니, 밖에서 사람들이 기다린다며 내게 누계기록을 부탁하고 황급히 나가신다. "어~! 사인도 안 하셨어요." 했으나 묵묵부답이다. 난감한 상황이다 할 찰나, 같이 온 직원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 나가신 분의 성함이 무어냐 물어 한아무개라 적고 있자니 어디선가 호다닥 나타나 "나 말고 김아무개로 적어 주세요. 저 말고요."란 말만 남기고 급히 사라졌다. 고쳐 적느라 같이 온 직원의 얼굴빛을 살피진 못 했지만, 왠지 알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과연 이 한아무개님은 여행간 내 지인의 얄미움을 산 그분이 맞을까?아닐까? 진실이 기대되는 신기한 매점이다.


                    



오늘은 라면 손님들로 진땀 뺄 일은 없었으나 좀 곤란한 상황이 있었다. 넉살 좋게 인사하며 들어오시는 인상 좋은 중년의 남성분이 여직원과 함께와 음료를 골라 들고 매점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20평도 더 되어 보이는 넓은 휴게실에서 왜 하필 거기에 앉았는지. 처음엔 내 할 일 하느라 몰랐는데, 얼핏 들어오는 소리가 여직원을 혼내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듣지 않으려고 않으려고 했으나 자꾸만 자꾸만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자리를 피해 주고 싶었으나 하필 그들이 앉은자리가 창고로 가는 길목이라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애매한 상황에 매점 안에 갇혔고 직원은 하염없이 혼이 났다. 서둘러 팟캐스트를 틀어 볼륨을 높여 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음료를 고르는 그녀는 참 해맑은 인상을 주었었는데, 업무태도까지 지나지게 해맑았나 보다. 언뜻언뜻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니 잘못하긴 했네...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날 때 혼나더라도 내가 알 필요까진 없었는데, 저 아가씨는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매점이용을 안 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무튼, 인상 좋아 보이던 그 상사의 자리 선정 센스는 좋지 못 했다. 아주. 많이.            





내일과 모레는 매점을 쉬는 날이다. 주말이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오랜만에 소소하고 새로운 사건이 있어 즐거운 것인지, 짧은 기간 일하는 거라 부담감이 없어 즐거운것인지, "제가 대타라서..." 한마디로 실수를 무마할 수 있는 편리함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출근할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신기한 매점이다.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첫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