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볼일이 생겨 길을 나선다. 도착 예상 시간보다 늦었다. 이러면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서울 가서 맛난 거 먹을 거라고 아침도 생략하고 신나게 왔건만... 일단, 굶주림을 면해야 한다. '성격이 포악해지기 전에 무언가 먹어두어야 한다' 생각한 그때 군밤이 눈앞에 보인다.
"3천 원어치 주세요."
"네~ 오천 원어치~!"
잉? 삼천 원과 오천 원이 헷갈릴 발음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뭐... 고객의 체격을 보아하니 삼천 원은 안될 성싶다... 판단하셨나 보다... 생각할 찰나, 바로 뒤이어 주문하는 손님이
"저는 삼천 원어치만 주세요. 삼! 천! 원!"
이라 강조하는 거 보면 분명 나는 바르게 이야기한 게 맞구나 생각했지만 벌써 내건 담아 두셨길래 그냥 오천 원을 이체해 드렸다.
최종 목적지까지는 8분 정도 걸어가면 된단다. 길을 살피며 네이버 지도를 맞춰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발걸음은 할 일 하고, 손은 밤을 쏙 입안에 넣어준다. 밤 한알을 우걱우걱 먹는다. 읍! 좀 설익었다. 잘 익혀 주시지... 혼자 궁시렁대며 또 먹는다. 오~! 잘 익었다. 잘 익어 맛은 있는데 목이 메일 듯 말 듯 한다. 다시 살짝 딱딱한 밤을 집어 먹는다. 설익은 게 목 막힘은 없이 잘 넘어간다. 신기하다. 군밤 장수 할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셨나 보다. 손님 목 막히지 말고 잘 먹으라는 큰 배려.
사실 군밤 할아버지께서 배려를 해서 그러신 건지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을 거 같지도 않다. 슬쩍 더 많은 양으로 높여 팔아치우는 솜씨를 봐서도 배려를 하실 분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편한 상황이 꼭 나쁜 상황만은 아니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긍정적 해석이 중요한 것 아닐까.
우적우적 설익은 군밤을 물도 없이 잘 먹어치운 내가 잠시 생각해 본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