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한 끝없는 질문 3

타인의 인정보다 중요한 나의 진정한 마음

by 두루박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행동이나 선택이 과연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죠. 나를 알기 위한 여정에서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MBA를 왜 하냐 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그때마다 나는 이걸 통해서 나는 좋은 경력을 가져갈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족들을 지킬 수 있고 가족들의 삶이 좋아짐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늘 이야기했었다. 마치 MBA 과정이 나와 가족을 위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다.


​자 그럼,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자.


​“그렇다면 만약 가족이 없다면 너는 MBA 과정을 할 것이냐?”


​자신의 겉에 누더기처럼 붙어 있는 가식과 허물을 걷어내고 자신의 내면의 마음의 대답을 해보자.


​“나는 그래도 할 것 같다”


​“그러면 만약 사람들이 MBA를 해도 인정해주지 않고 부럽거나 대단하다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래도 할 것인가?”


​“나는 그러면 안 할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MBA 과정이 가족을 위한 것은 결국 허물과 가식이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며, 나는 타인의 인정과 시선 때문이라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여러 순간순간 나타나는 나에 대해서 나의 내면의 깊숙이 숨어 있는 진짜 나의 마음의 대답을 끄집어 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본질을 찾기는 여간 쉽지 않다.


​인간은 자기 보호 본능이 있기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고 합리화하려 하기에 그 본질이 꼭꼭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몇 가지 더 일반적인 질문을 해보겠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라고 해보자. 여기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좋은가?”


​대부분 사람들의 대답이 “그래야 좋은 직장에 가게 되고 나중에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지 않나”라고 대답한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를 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질문을 해보자.


​“아이가 좋은 직장에 가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아이가 좋은가?”


​“그건 확신이 없다.” 아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우린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좋은 직장에 가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내가 좋은가?”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직 허물과 가식이 덮여 있어 그 내면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해보자.


​“아이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해서 당신이 죽을 때까지 아이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하면 좋은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나 조차도 “그건 싫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인지 고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나중에 죽을 때까지 아이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않고 싶어서 아닌가?
​나는 대답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맞는 이야기”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이 대답이 흑백으로 혹은 이분법적으로 그렇다 아니다 라고 극단적인 대답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가면 내가 좋다 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좋은 것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그리고 그 삶이 자연의 순리인 생존의 흐름 속에 정서 육체 물질 삼각형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아이와 함께 고민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게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자기가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자기의 마음속 대답이 그것이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닌 아이를 위함이 맞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찾기 어렵더라도 그것이 비록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진정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


​결국 아이가 꿈을 찾아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균형을 맞추게 되기에 아이의 결정이 나 자신을 위함 아닌 오롯이 아이 자신을 위함이 우선시되도록 해야 하며 아이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하겠다.



​아이에게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하는 말 속에 나를 위한 마음이 숨겨져 있듯, 우리의 많은 행동과 말은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하고 편하게 만들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는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