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정보다 중요한 나의 진정한 마음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행동이나 선택이 과연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죠. 나를 알기 위한 여정에서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MBA를 왜 하냐 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그때마다 나는 이걸 통해서 나는 좋은 경력을 가져갈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족들을 지킬 수 있고 가족들의 삶이 좋아짐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늘 이야기했었다. 마치 MBA 과정이 나와 가족을 위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다.
자 그럼,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자.
“그렇다면 만약 가족이 없다면 너는 MBA 과정을 할 것이냐?”
자신의 겉에 누더기처럼 붙어 있는 가식과 허물을 걷어내고 자신의 내면의 마음의 대답을 해보자.
“나는 그래도 할 것 같다”
“그러면 만약 사람들이 MBA를 해도 인정해주지 않고 부럽거나 대단하다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래도 할 것인가?”
“나는 그러면 안 할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MBA 과정이 가족을 위한 것은 결국 허물과 가식이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며, 나는 타인의 인정과 시선 때문이라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여러 순간순간 나타나는 나에 대해서 나의 내면의 깊숙이 숨어 있는 진짜 나의 마음의 대답을 끄집어 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본질을 찾기는 여간 쉽지 않다.
인간은 자기 보호 본능이 있기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고 합리화하려 하기에 그 본질이 꼭꼭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몇 가지 더 일반적인 질문을 해보겠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라고 해보자. 여기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좋은가?”
대부분 사람들의 대답이 “그래야 좋은 직장에 가게 되고 나중에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지 않나”라고 대답한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를 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질문을 해보자.
“아이가 좋은 직장에 가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아이가 좋은가?”
“그건 확신이 없다.” 아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우린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좋은 직장에 가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내가 좋은가?”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직 허물과 가식이 덮여 있어 그 내면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해보자.
“아이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해서 당신이 죽을 때까지 아이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하면 좋은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나 조차도 “그건 싫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인지 고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나중에 죽을 때까지 아이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않고 싶어서 아닌가?
나는 대답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맞는 이야기”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이 대답이 흑백으로 혹은 이분법적으로 그렇다 아니다 라고 극단적인 대답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가면 내가 좋다 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좋은 것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그리고 그 삶이 자연의 순리인 생존의 흐름 속에 정서 육체 물질 삼각형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아이와 함께 고민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게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자기가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자기의 마음속 대답이 그것이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닌 아이를 위함이 맞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찾기 어렵더라도 그것이 비록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진정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
결국 아이가 꿈을 찾아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균형을 맞추게 되기에 아이의 결정이 나 자신을 위함 아닌 오롯이 아이 자신을 위함이 우선시되도록 해야 하며 아이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하겠다.
아이에게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하는 말 속에 나를 위한 마음이 숨겨져 있듯, 우리의 많은 행동과 말은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하고 편하게 만들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는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