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기 위해 달린 3년
MBA라는 세 글자는, 제게 단순한 학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을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 같았고,
‘너는 특별하다’는 말을 다시 듣게 해줄 열쇠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착은, 3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삼켜버렸습니다.
이렇듯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어 한번도 내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부모님, 주위 친구들, 주변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마치 내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갔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입사를 한 뒤에도 나는 항상 미래를 생각했고 지금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직장생활 보다는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주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누구나 하는 그런 직장생활이 아닌 더 넓고 높은 위치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꿈꿨다.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고 한국이 아닌 전세계를 누비는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화려한 경력의 직장생활, 그게 반드시 필요하고 있어야 된다고 느꼈다. 실제 나의 이런 목표와 열망을 주변인에게 이야기하면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들떠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나에게 한결같이 참 잘 준비하고 인생에 대한 설계와 실천을 해 나간다고 인정해 주었고, 마치 내를 대단한 사람처럼 치켜세워 주웠다. 그런 타인의 인정은 나의 어린시절부터 이때가지 쭉 받아왔고 받으려 했고 그리고 그런 인정을 받는 게 나의 자존감 유지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학을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MBA 유학을 통해서 내가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MBA 유학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회사 동료 중 한명에게서 자신도 MBA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나 반가웠고 서로 많은 이야기도 했고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 MBA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GMAT이라는 시험 성적이 필요한데 그 친구도 이 시험을 준비했으나 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질 않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질 않게 되자 그 성적에 맞는 수준의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나는 한편으로 위로를 했으나 내 마음속에는
“그 성적으로 유학을 가면 과연 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많이 남았으며
“나는 반드시 더 좋은 성적으로 더 순위가 높은 대학으로 가야 하겠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너는 못했지만 나는 해낸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GMAT 시험은 생각보다 나에게는 큰 벽이었다. 시작하기전에 어려움을 이해했고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회사 퇴근하고 녹초가 된 상태이지만 도서관을 갔고 주말마다 서울에서 학원 수강하고 온라인으로 수강하는 등 굉장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 주말부부를 했는데 아이들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지금 GMAT의 점수가 더 중요한 것처럼 생활했다.
그 당시 GMAT 학원 강의가 주말에 서울에서 있었는데, 수업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 고등학교 친구이자 고향 친구였다. 그 또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MBA를 준비하고 있었다. 반가웠고 서로 주말에 같이 준비하고 정보도 나누고 공부도 같이하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자기는 더 이상 준비 안하고 다른 길을 간다고 했다. 성적도 안 나오고 오히려 약대나 가서 약사가 되는게 더 좋겠다고 하면서 중도에 접고 약대를 진학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포기를 하고 약대를 가니 마음에 동요도 있었지만 내가 꿈꾸는 멋진 삶을, 중간에 포기한 친구, 성적이 안 좋아 낮은 수준의 학교를 간 친구, 그리고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해 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기에 자신을 더 채찍질을 했고 회사 휴가, 주말, 공휴일등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분은 모두 GMAT 시험 준비에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GMAT 점수가 나오질 않아 힘들었고 그 때 마다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나중에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화려한 직장생활을 하면 이 모든 게 보상되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 것이다”
“나의 인생은 질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버터 내고 이겨냈다. 그 당시 아내는 독박 육아를 했음에도 미안함 보다는
“지금 준비를 잘해서 나중에 다 보상해 줄 수 있다”
라는 마음으로 내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했다.
“아버지의 역할은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생활비와 기타 필요한 돈을 집에 가져다 준다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것 같다.
“경제적 지원과 무관심은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잖아”
“그런데 나는 거기에다 미래를 준비까지 하고 있으니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고, 이런 노력이 결국 내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나의 상황을 이해시키기보다는
“내가 잘 되는 것이 가족을 위한 길이야”
“내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지금 이런 고생하고 있는 거야”
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희생을 강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했던 GMAT을 3년을 거의 다 채우고서야 내가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수차례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그 이전에 나의 삶에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수많은 좌절을 그 당시 느꼈던 것 같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시기에 주위 사람들의 안부 조차도 듣기가 싫었고, 가족과 아이들에게 조차도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 같다. 좌절하고 또 좌절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라는 신념으로 버텼다. 마치 GMAT이 MBA가 된 것처럼 MBA를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 GMAT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상태로 시험을 준비했다.
그렇게 원하는 GMAT 점수가 나왔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은 시험자리가 다 차서 부산까지 가서 시험을 보게 되었고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 것이라 그 결과를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니터로 내가 원하는 시험 점수가 나왔을 때 잠시 멍했다. 조금 이상했던 것은 뛸 듯이 기쁘지 도 그렇다고 지난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나지도 않은 체
“이제 더 이상 GMAT 공부를 안 해도 된다”
라는 홀가분함만이 남았던 것 같다.
GMAT 성적을 받았으니 다음은 IBT를 준비해야 했다. IBT는 영어 성적으로 외국인이 미국의 MBA를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정 점수 이상이 필요했으며 수준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고득점이 필요했다. IBT 점수를 받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지만 준비하고 시험보고 원하는 점수를 얻기 위해 GMAT을 위해 했던 것처럼 반복해서 노력했다. 다행히 GMAT 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점수를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이제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저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인정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란 사실을.
그 깨달음이 제 삶을 바꿔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