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정에서 나의 인정으로

기질을 다스린다는 것의 진짜 의미

by 두루박

누구나 타인의 시선 안에서 자라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시선을 걷어내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왜 나만’이라는 감정이 바로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저의 기질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내가 손해를 보거나 나만 피해를 보는 일에 민감했고, 그런 일이 있으면 따져 물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정하도록 강요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한 친구와 숙덕거리며 떠들고 있었는데, 앞자리 친구가 나에게만
“조용히 해라.”
라고 말했다.

그때 너무 화가 났던 이유는, 그 친구가 나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 떠든 게 아닌데 왜 나한테만 이야기하냐.”
라고 따졌지만, 그는 여전히 무시하고 고압적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결국 참지 못하고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했다.
말로 끝내지 못하고, 그 분노를 폭력으로 풀었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두 가지 일화를 보면, 나는 ‘나만 피해를 보는 것’에 굉장히 민감했던 것 같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떠들었다는 잘못인데, 정작 내 잘못보다 ‘나만 피해를 본 것’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기질을 가진 나.
그래서 잘못된 행동보다,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을 인정하라고 타인에게 따져 묻고, 그것을 그들이 인정하게 만들려 했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나를 지적하거나 잘못을 이야기하면, 그 사실보다 “다른 사람은?”, “왜 나만?”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결국 ‘나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상대가 인정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기질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기질은 나쁜 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본능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기질을 다스리지 못해 내가 괴로워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데 있다.
그 기질 자체는 물려받은 것이니 내 세대에서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의 행동 변화를 통해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고,
그 세대가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의 인정’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는 것 —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기질은 없앨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과 세대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질이 저를 흔들지 않게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나의 인정으로 균형을 잡을 때 비로소 저의 기질을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어쩌면, 조금은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