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으로 미적분을 풀 수 없는 이유
우리는 대개 자신이 ‘정서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일상은 무난하고, 관계는 평범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우리에게 ‘정서의 미적분’을 풀어보라 던질 때,
그제야 우리는 자신이 아직 구구단 수준의 정서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나 역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선후배 관계 속에서도 감정의 오르내움은 있었지만
‘내가 정서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탄생은 내 삶의 방정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전까지의 감정은 단순한 일상적 교류 속의 ‘기분의 변화’ 정도였다면,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는 감정은 훨씬 더 깊고 복잡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정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연은 인간에게 결혼과 양육을 통해 정서적 능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이전에 이미 충분히 성장시켜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육체와 물질의 성장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지만,
정서의 성장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부족함은 평소엔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아이를 키우는 순간, 여지없이 드러났다.
내가 아이를 처음 품었을 때의 정서적 수준을 수학으로 비유하자면
‘구구단과 사칙연산’ 정도였다.
그 정도만 알아도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정서적 능력은 ‘미적분’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구구단으로 미적분을 풀려 했던 것이다.
수학에는 체계적인 교과 과정이 있다.
구구단 → 사칙연산 → 방정식 → 함수 → 미적분.
정서도 마찬가지다.
단계별로 성장해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정서의 미적분’을 맞닥뜨린 셈이었다.
정서적 능력은 단순히 감정을 참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와 삶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하나의 사고력이며,
그 수준은 경험과 성찰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전합니다.
아이를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결코 늦은 배움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준 ‘정서적 성장의 초대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