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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04. 2022

여행

떠나야  알게 되는 것들

  여행은  집으로 돌아갈 핑계를 찾기 위해 한번 나가보는  것이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뭐 때문에 멀리 나간대?”<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에서 by 정혜윤   


   

  부픈 가슴이 주체가 안 돼서 멀리 가급적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던 그 시절, 스무 살엔 그랬다. 어려서 가족여행은 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농사꾼이셨는데 사철 내내 논과 밭에서 수고를 다하는 것을 숙명이라 여기셨는지 일 이외의 삶은 몰랐다.  사춘기였을 때는 일하는 게 귀찮아 비 오는  주말이 휴식이라 그런 날씨를 주라고 신께 기도도 해봤다.  어느 생명체도 사회화라는 과정이 있다. 고등학교는 도시에서 다녔다. 대학은 도시를 떠나 더 멀리 가고 싶었다.   울타리를 벗어난 강아지처럼  그저 달음질치고 어미에게서 떨어져 독립하고 싶었다. 부모는 자주 집안 농사일을 시켰고, 자식들에게서 부족한 일손을 메꿨다. 노동력은 메꿨지만, 자식들의 허기진 마음을 메꾸는 건 잘 모르셨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최선이었을테다.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큰 책임이라고만 여기던 시절을 살아오셨으니까 말이다.


 


  결혼을 했다.  한반도 지도를 놓고 보면 고향에서 차로 300킬로 이상의 거리에 시집와서 살고 있다. 그 시절이 어느덧 이십여 년이 돼간다. 흐르는 물리적 시간만큼 새로운 터전에 적응해가고,  그사이 내 아이도 훌쩍 성장했다. 괜찮을지 알았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으니까. 고향은 북한에 있지도 않고 언제든 갈 수 있다.  이곳에 살면서 자주 고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딸려오는 추억의 냄새가 그립다.  여행을 다녀온 누구에게서 그곳을 방문한 이야기나 변한 작은 도심에 대한 것들과 여러 소식들에도 그저 내 귀는 반가울 뿐이다. 아직 어머니와 언니들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주변인들은  코로나 시국에 고향에 가고 싶어도 비행기를 타야 하니 못 나갈 할 타국도 아닌데 뭐가 그리  어렵냐고 말하겠다. 하지만 현실에 발이 묶인 자는  결코 발이 자유롭지 못하다.  꿈이라는 말은 허상이고, 결코 가  닿지 못하는 것인가 싶다. 이사는 내게 꿈이다. 주부로 살면서 자발적으로 내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가족들의 생활이 당연히 이곳에서 수월한 데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만 같다. 조금 더 조금 더 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내 삶 역시 유한함을 잊은 건 아닐까. 용기란 녀석은 집을 나갔고, 불안과 주저함만이 나를 독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너는 누구니 하고  물어본다.  나를 만든  할의 환경이 친구들에 비해 너무 작고 빛나지 않아서  받은 것이 없다며  모든 것을 내젓고  이후엔  남은  나의 2할로 살아가려 애써봤지만  진정한 내가 아닌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 혼란스러웠다. 가면을 쓰는  당연한 일인지 익숙지 않다 여전히. 2할의  모습도 나인데 말이다.  성정의  할을 말하자면 이렇다. 책을 매일 읽어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때 만들어진 나다.   돈을 주고 교육받은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레 호흡하며 몸에   학습은 유년의 경험이 아닌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삼아  시간씩 걸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내발은  당시 나를 환경에 적합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같다. 걷는  힘든 일인지는 몰랐지만 더위와 추위는 싫었다. 학교와 집의  거리 때문에 걷고  걸어가는 등굣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없었을  혼자 이야기를 엮어내며 공상에 빠지기 일쑤였고 눈은 주변의 환경을  관찰했다.그런 시간은  마음을 풍족하게 했던  같다. 방학 일기를 어김없이  상장은 따라오는 보상이었다. 그땐 꿈이 소설가였을 정도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내 모습이 크고 빛나지 않아도 너를 더 사랑해주면 안 돼? 책과 글을 사랑하는 네가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인걸. 너만의 그런 모습이 바로 너야.  어쩌면 네가 살았던 그 삶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던 유년 , 요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한적하고, 사색이 가능한 삶 말이야. 전원(田園)의 삶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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