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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15. 2022

아버지

마흔고개를 넘어서


  여름날 쏟아붓는 소나기를 만나면  난감할 때가 있다. 우산이 미리 준비리도 되지 않은 날은 비를 피하기 조차 어렵다. 살다 보며 갑자기 닥친 어려움은 이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되고 그 속에서 정신을 소진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신은 인간들에게 망각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저러한 겹겹의 사건들과 감정조차도 세월 앞에 점점 무뎌져 간다. 시련의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는 또 남은 생을 살아낼 힘을 부여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따금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  가슴속 손을 넣어 작정하고 헤집으면 일렁이는 표면 위로 그러한 사건과 감정들이 뭉텅뭉텅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마음속 깊이 통증과 눈물이 차오르게 되는 일 중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 25주년 제사가 있었다. 올해 제사에 참석할 시간이 안 돼서 혼자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살아서 고된 농사일을 하시며 그 시름을 잊으려 술을 많이 드셨고, 간경화가 왔다. 병으로 수년간 고생하시다 내가 스무 살 되던  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나와 동생을 낳아서  유독 우리는 애지중지 아끼셨다.  혼날 일들이 가끔 있어도 절대     드셨는데, 그럴   보통 동생 간수를 못한 죄로 위에 언니만 혼이 났다. 하지만 나는 사춘기를 보내면서 부모님께 반항도 많았다.   졸업반 때 일이다.좋지 않은 집안형편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학에  보내 주신다는 말을 듣고는 아픈 아버지께 원망하며 화를 내며 학교를 갔다.  이후로도   계속 뾰로통했고  아버지를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두고두고 마음을 아프게 한 걸 후회했다.


   올해  여든이 넘으신 엄마는 무척 늙고 야위셨다.  제사가 다가오기  어느  어머니 꿈에 아버지가 나오셨다고 하셨다. 제사가 다가와서 그럴 거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남은 5남매를 기르고, 시집, 장가보내면서 얼마나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리웠을까.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손주들도 만나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셔 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머릿속에 아버지는 여전히 쉰여섯이고 더 이상 늙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 볼 때가 좋다. 반대로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진 그분의 목소리가 그리워 사무치는 날이 있다.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얼굴에 비해 결코 사소하지 않다. 누구를  만나고 시간이 흐르면 얼굴은 금세 감감해지는데 그의 목소리와 함께 나눴던 이야기는 귓전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아무래도 떠올리지 못할 때 괴로워진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진작 허공에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일까. 유독 오늘은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슴 깊이 새기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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