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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15. 2022

내 마음의 사전

갈구하다: 간절히 바라며 구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고향을 벗어나 도시로 여행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과 호기심은 점점  부풀어 올라 이제 어디든 멀리 훨훨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대학을 기회삼아 소도시가 아닌 대도시로 나가 생활해보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학창 시절  다섯 남매 중 넷째라 배움이나, 하고 싶은 무엇이건 내 몫이 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늘 불만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둥지를 떠나듯  결혼 한 둘째 언니가 살고 있는 대구에 가면서 그곳에  전문대학을 갔다. 전공과 상관없이 그냥 대도시에 가려고 언니 집 근처에 있는 대학을 골랐다.   유아교육과에 입학하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 돈 봉투를 받으시고 아버지께서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셨다. 그해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간경화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장학금이 내가 아버지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린 선물이다. 철없이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았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소식을 밤늦게 서야 전해 들었고, 그날 혼자 언니네 집 방에 앉아 많이 울었다. 아마도 열아홉 살의  마음의 넓이는 딱 그만큼이었는지 모르겠다.

   여고를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했던 건 아니어도 아침 일찍 학교 가고 12시가 다 돼 집에 오는 생활이 반복되니 마음은 항상 답답했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건너는 모든 청소년들에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언제든지 그것들을 던질 핑계를 찾으려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여느 친구들처럼 술과 음악에 빠졌다. 젊음이라는 담보를 걸어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을 써대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새벽이 되도록 노래방에서 밤을 새우며 당시 유행한 <서태지와 아이들>, <H O T> 등 박자를 잘게 쪼갠 ‘댄스가요’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때 자주 가던 '런던 호프’는 우리의 아지트였고 ‘소시지 야채볶음’은 우리가 즐겨먹던 안주였다. 밤새 수다와  술을 마셔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의 건강과,  놀기 위해 언니들에게  뻔한 거짓말로 속임수를 쓰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난다. 지금은  몇 시간만 놀아도 피곤이 온몸을 지배한다.

   대학교를 일 년 다니고 결국 휴학을 했다. 처음부터 적성을 생각하고 간 대학이 아니었기에 과목에서 흥미를 붙일 수 없었다.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시간을 업신여기던 내 생활을 돌아볼 시간이 왔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고 한 지역 신문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대학을 못 나왔기 때문에 무시라는 걸 그때 받아봤다.  기자들이 쓴 글을  팩스로 제때  안 넣어서  욕을 실컷 들었던 기억도 있다. 이후 나는 다시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때 영어나 일본어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는데 언어 수업을 다 좋아했었다.  대학에 다시 입학했고 나는  모든 수업에서 꽤 나이 많은 학생에 속했다. 하지만 이전 대학에서와 달리 모든 영어수업이 흥미롭게 느꼈고 다녔던 관광영어과에서 중간고사에서 과 1등을 했다. 늦깎이 대학생활을 하며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감당해야 했고 자주 피곤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돼 어느 때보다 성취감을 두둑이 느끼던 시기였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 시기에 청춘은 내적으로 성장하며 부풀어 오르는 호흡을 더 벅차게 몰아세우며 젊음을  보낸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젊은 나이와 건강한 신체 덕분이었다.  게다가 생존 이외의 사치, 허영, 무한한 자신감등이었다.  그런 것들이 그 나이 때만 가질 수 있는  보석과 같았고, 그 시기를  다리 삼아 세상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됐다. 뒤 돌아보니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이 넘쳐흘렀던 그 시절의 내가 눈물 나게 그립다.  그 시절을 함께 견뎌주던 그 친구들도 사무치게 그리운데 이제 연락이 안된다. 이게  삶의 아이러니이다.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젊음에 대해 서술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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