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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Apr 05. 2023

사월의 비

 비소식이 들렸다. 얼마나 기다리던 비인가. 대지도 나도 물이 고팠다. 비가 오기 전에 망가지지 않은 우산을 준비했다. 어려서는 등굣길에 비가 자주 왔던 것 같다. 그런 날 아침엔 형제들과 우산 전쟁이 있었다. 오남매 중 우산을 먼저 집어 들고나가면 뒷사람의 우산은 한 귀퉁이의 실이 풀어져  모양이 바르게 펼쳐지지 않은 꼭 바보 같은데, 그런 우산이 내 차지였다. 이런 우산을 들고나가자면 내 마음도 구깃구깃해졌다. 봄철 농사지으시느라 더 바쁜 어머니는 아침에도 내 우산의 사정을 살필 여력이 없으셨나 보다 하고 마음의 크기가 커져서야 이해가 됐다. 내 식구들이 몸에 비가 들이치지 않는 크고 깨끗한 우산을 들고나가는 것이 작은 기쁨이다. 이제 나는 우산을 꿰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산이 처음부터 잘 만들어져 나오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작년부터였던가,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지방 소도시 논밭이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비를 사람만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원도  마르고, 지하수를 끌어온다는 말도 들렸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날, 세월이 훌쩍 지나 내 집 앞, 목련, 매화, 벚나무, 명자나무 화단에 작은 풀꽃들까지 나른한 몸을 이기기에 넉넉지 않은 물 때문에 어쩐지 피부가 더 곱디고운 느낌이 아니었다. 미세먼지가 보드라운 얼굴에 분을 뿌리니 누가 깨끗이 목욕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기다리던 4월의 첫 비가 꽃비가 되어 내린다. 연둣빛 나무들이 좋다고 몸을 살랑살랑 흔들어 춤을 춘다.윗층의  움츠린 벚나무가 목을 쭉 펴니 오늘 한 뼘은 더 커진 듯하다. 아래층에 사는 철쭉들도 빨간 얼굴을 드디어 내놓는다. 물을 더 달라 욕심내는 친구들은 없다. 하늘이 선물한 물은 산천초목을 적시고, 겨울 동안 묵혀 놓았던 근육을 풀고 스트레스도 털어버린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햇빛 한 줄기, 비 조금이라도 생명체를 다시 살게한다. 오늘따라 더욱 고마운 비, 천천히 왔다 천천히 가렴. 비를 통해 오늘 내 오감도 폭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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