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정의할때는 달콤, 기쁨 그리고 행복과 같은 색만 있는 것일까? 지천명이 가까웠는데도 아직 사랑이 뭔지, 삶이 무엇인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많은 책들에서 그것들의 정의는 피상적이라 느낀다. 나 같은 경우에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 한 것이 아니라 그런지 더더욱 사랑이 어렵다. 가까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외눈박이 사랑인가싶다. 한 눈으로 보다보니 한 사람만 보이나보다. 한 남자는 다른 남자에게 기대가 커 왜 그것밖에 못 하냐고 늘 실망하고, 안타까워한다. 한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기대치가 커, 왜 이것밖에 안 해주냐하고 실망하고 후회한다. 처음엔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의지하고 기대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인 것 같다. 그러니 편안한 관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적당히 서로 기대하고 내려놓고 바라보면 화날 일도, 실망할 일도 아닌데 그게 제일 어렵다. 관계에서 반반은 없나보다.
삶은 또 어떤가. 이렇게 살아지는가 싶으면 그게 아니어서 실망하고, 어느새 놀랄 기쁨이 찾아온다. 예컨대 내가 강아지를 키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벌써 우리집에 온 강아지가 일 년이 되었고 나는 요즘 강아지에 푹빠져있다. 제대로 된 엄마라면 육아는 항상 기쁨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 어려서 키울 때는 내 체력이 달리고, 아이들이 크면서 자기 스스로 큰 것처럼 말할때는 마음에 상처만 남는 것 같다. 사고로 요즘 고생하는 한 남자가 있는데 늘 건강해서 다친다거나 아플거라는 걱정을 안 했는데, 아프고 보니 건강했던 그의 모습이 무척 그립고 소중하다. 삶은 예측불허다.
갑작스레 뒤흔드는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좋지 않은 감정이 들때면 밀어내고 부정하고싶은 마음이 커진다. 부정적인 감정조차 내가 다루어야하는 내 감정이다. 사랑도, 삶도, 감정도 모두 하나로 정의할 수 없기에 그저 각각의 음들을 잘 변주해가면서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 난 내가 인간 나이로 많은 것을 알 때라 자부해왔지만, 아직도 나는 사랑도, 이별도. 기쁨조차도 마주할 때 제대로 즐기지 못하며 미숙한 것 같다. 멋지게 내 삶속에 녹여진 감정도 사랑해주면서 달래가면서 변주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쉰이 되면 모든 일상을 쉽게 다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려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