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어려워

<나도 할 수 있다>

by 김작가

도전을 두려워하며 겁이 무척 많았던 내가 30대 초반에 운전을 배우게 된 데는 순전히 사회를 향한 내 사소한 오기에서 시작됐다. 아들이 태어나 백일이 되었을 즈음 여름날 있었던 일이다. 나는 아들을 안고 있었고, 남편은 우리 둘을 위해 약간의 그늘이라도 만들어 주려 양산을 받치고 그당시 내가 좋아했던 추어탕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식당 문 앞에 선 그는 문을 열어 우리를 먼저 들여보낸 후 자신도 양산을 접고 들어오는 순간 열어놓았던 유리 문이 저절로 닫히면서 미쳐 덜 들어온 남편의 발뒤꿈치를 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갑자기 발 뒤꿈치에서 피가 계속 났고, 식당 아주머니가 지압을 하라고 급히 마른수건을 갖고 나오셨는데, 그걸로 막아도 소용이 없는 상태라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접합 수술을 했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통깁스를 8주 간 해야 했다. 당시 남편은 대학원 마지막 학기 논문 준비를 해야 해서 자주 학교까지 가야 하는데, 무릎을 굽히지 못하니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운전을 배우지 않았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의 등교를 계속 도와 주라고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몇 번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갔는데 꽤 멀어서 돈이 너무 많이 나왔다. 다행히 아는 분이 전동휠체어를 빌려주셨는데 그걸 타고 저상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저상버스가 당시에 많이 없었다. 뿐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자니 길이나 건물 출입 시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요즘엔 시민, 장애인 단체에서 요구하는 부분들을 수용하여 도시 구조가 만들어지지만 그 당시는 장애인들의 편의 따위는 크게 고려되지 않고 지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운전을 배워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 가족을 지켜야지.’ '미리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이렇게 삶이 어렵구나'. 그 후 남편이 좋아지고 난 직후 내집 차를 이용해 남편에게서 운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운전을 배우다 보니 여러 번 싸울 일이 있어서 당장이라도 학원으로라도 가겠다며 화를 내면, 남편이 또 부드럽게 다가와 내 마음을 고쳐먹게 다독였다. 그 말에 현혹돼 나 역시 이미 투자한 시간과 앞으로 절약하게 될 학원비를 생각해서 끝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배웠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필기야 한 번에 붙었지만, 시험장 내 주행이나 도로 주행에서는 여러 번 탈락을 했다. 불합격할 때마다 남편에게 ‘자기가 안 알려준 게 나와서 떨어졌다’며 남편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수개월 만에 운전 면허증을 손에 쥐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도로 주행에서 한 번은 직진해야 되는 코스인데 좌회전 차선에 차를 몰아 결국 탈락해야 했던 어이없는 실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실수도 있었기에 도로주행 세 번 만에 합격했는데 주행 감독관이셨던 경찰관은 하필 두 번 나를 평가하셨던 분이셨다. 나를 알아보시고 결과에 함께 기뻐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차로 처음부터 운전을 배워서 그런지 면허증을 딴 이후로 주행하는 건 훨씬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식구들끼리 운전 배우거나, 공부 배우는 건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가 내가 묻는다면 운전학원에 가서 면허증 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가족 간에 운전 배우다가 사이가 나빠질 바에 교육기관에 가서 배우도록 권유하고 싶다. 그런 주행의 날들이 켜켜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에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건 역시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운전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배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리운 완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