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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13. 2022

두 여인

늦 봄

“어머니 왜 식사 안 하셨어요?”

   밥솥에서 통을 꺼내며 시어머니께  싫은 내색을 하게된다.  딱 봐도  여러날동안 밥솥에  밥이 보온 상태로 있다 보니 누렇게 변했고 숟가락으로 긁어보니 그마저도 딱딱하니   좋은말이 안 나온다.

“이런 밥을 어떻게 먹어요. 어머니, 밥을 조금씩 자주 해 드세요.”

밥을 들고 싱크대로 가 음식물 쓰레기에 넣으려니, 물에 말아먹으면 돼 버리지 마라 아깝다,며  언성을 높이신다.  요즘 어머니가 영  입맛이 없긴한 것같다

   한 두 주 만에 어머니 댁에 들르게 되면 어김없이 밥통 확인과, 냉장고 확인이 먼저다. 끼니를 대충 드시는 올해 여든셋 되신 민숙씨는 시어머니고,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를 쓰신다. 얼마 전 치매 검진에서 인지점수가 좋지 못해 그 이후 치매약까지 드시고 계신다.


“ 내가 아무래도 올해까지만 살라는가 보다. 너희 아버지가 며칠 전에 내 꿈에 나왔더라.”

“엄마 왜 그런 말을 해요!”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수술한 데가 아파 죽겠다.”

매 번 전화 통화를 할 때 이렇게 응정을 하시는 경이씨는 올해 여든 하나 되신 친정어머니이시다.    두 분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시는 분들이다. 시어머니는 유독 말씀과 성품에서 안정감을 갖고 계신다. 어떤 일에도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다. 어떨 땐 너무 답답하리 만큼  급한 게 없으시다. 시어머니 민숙씨의 취미는 텔레비전 보기, 혼자 화투치기와 책 보기이다. 노인정은 거의 나가시지 않고, 외로움은 평생의 친구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시는 것에 익숙하시다. 그와 반대로 친정어머니 경이씨는 노인정에 매일 들러 수다를 떠셔야 할 만큼 친구도 많으시고 활동적이시다. 그리고  아픈 건 아프다고 말하고 위로를 꼭 받으셔야 한다. 대단한 것은 아직도 밭에서 키운  채소를 팔러 나가실 정도로 부지런함을 유지하신다. 어머니는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해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으시다. 문해교육을 못 받은 것이 난 너무 안타깝다.

   두 분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다르다.  한분은 전라도에서 평생을, 또 다른 분은 경상도에서 평생을 사시며, 그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에 기꺼이 맞추며 성실하게 살아오셨다.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었고, 가난한 삶을 선대에서 물려받아 고생을 많이 하셨다. 시어머니는 맏딸로, 친정어머니는 막내딸로, 두 분은 한국  현대사의 의 숱한 사건들과 함께해왔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면 절약이 몸에 밴 것이다.  나는 죽이나 국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알맞게 따뜻하게 데워지면 꺼내어 먹지만 어머니들은 죽을 그릇에 담아 밥통 안에 넣어 놨다 몇 시간 후 뜨거운 그릇을 ‘후후’ 불며 꺼내 드신다. 당신들에게는 편리함보다는 절약이 우선이고, 많은 가전제품의 사용법을 아직도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다. 여성으로서 두 분 다 여러운 형편에도  많은 자식을 낳고 공부시키느라 고생하셨다. 친정엄마는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 때서 물을 데웠고, 시어머니는 연탄불에 물을 데워 살림을 하셨다. 그분의 생활에서 얻은 경험들은 현대에 와서 많이 변화되고 그런 방식은 이제 구식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들이 많다.  내가 새로이 습득한 가전을 다루는 방법이나, 시스템에 대해 알려드린다. 그분들이 내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어머니들은 팔십 년 이상을  살아내셨다. 그들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오십 대와 육십 대, 그리고 칠십 대와  팔십 대를 그들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계시다. 때로는 슬프고, 기막히고, 구식 노인들이라는 대접을 받으며, 점점 퇴화를 겪고 있지만, 나는 그들을 절대  못 따라간다. 나는 그 삶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두 분의 막내딸로 그리고  맏며느리로 앞으로 살아갈 내 긴 여정에 대해 약간의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복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처음 간 인적이 드문 산에서 갈래길에 섰을 때, 이정표마저 불확실할 때 순간 고민을 하게 된다.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할 때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희망의 끈처럼 찾게 되는 것은 산악회에서 나무에 걸어 놓고 간 산악회 이름이 박힌 띄지이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게는 두 어머니가 그런 분들이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갈래길에서 많은  고민이 있을 때 떠올릴 분들이다. 많은 지혜와 경험을 내게 유산으로 남겨주시니 기꺼이 감사하게 들으며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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