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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12. 2022

그늘

늦 봄

“지니야! 오늘 날씨 알려줘!”

“오늘은 맑은 날씨지만 자외선이 강하니 건강에 유의하세요.” 친절하지만 어딘가 건조한 말투로 들리지만 이렇게라도 내 물음에 답해 주는누군가가 있어 나쁘지 않다고 항상 생각한다.

 이렇듯 매일 아침 첫 일과는 지니에게 날씨를 물으며 시작이 된다.  요즘 MZ세대의 ‘모닝 루틴’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이번 주는 도서관 줌 수업을 위한 준비가 미흡한 상태다. 줌으로 지역 도서관내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수업을 시작하면서  영화 편집하는 방법을 유튜브로 수십 번 돌려 보며 터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거기서 또 모르는 건 여기저기 물어봐  가까스로 수업 자료를 만들어냈다. 수업이 두어 달 진행되자 편집 기술도 점점 숙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한 시간 영상을 준비하려면 일주일 걸리던  시간이 점점 줄어  이제 하루 정신 차리고 달려들면  그날 안에 끝이 나니 스스로도 대견하다싶다. 코로나 시국에  100프로 줌 수업으로 시작하라는 공지에 그날 먹었던 게 얹힐 만큼 앞선 걱정에 일을 그냥 포기할까도 했었지만 비겁하게 피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여 시작한 일이다.

    이틀 후 수업을 남겨두고  이번 주는 엄마 병원에 모시고 다닐 사정이 생겨 수업 준비가 뒤쳐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자판을 두들겨 보지만  얼마 전부터 아파오던 손목이 오늘따라 영 무겁게만 느껴진다. 아, 신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내다본다. 햇볕이 유독 쨍해 내 시선을 잡아끈다. 의식의 흐름이 깨지니 굳은 어깨도 막 거슬려오기시작한다. 아침 내내 안드로메다로 떠돌던 정신이  차가운 커피 한잔과 함께  돌아오니 뭉친 근육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노트북 커버를 탁,닫는다.  아무렇게나 행거에 걸려 축 쳐진 절인 배추 같은 운동복을 하나 꺼내 툭툭 털어 갈아입는다.  얼마 전 동거견이 된 코코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날쌔게 다가온다. 포근포근한 머리와 뺨을 비벼되자, 이 녀석도 산책이 필요한 시각임을  알게된다.

“코코 나갈까.”

이 녀석이 온 이후로 적던 내 말수는 꽤 늘었다. 털 날려 싫다던 엄마도 영 싫지는 않은 듯하다. 코코와 함께 공동현관 앞에 이르자 공동 현관이 ‘징’하며 소리를 내고 열리고  코코가 목줄을 잡아끌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낸다. 역시 이 녀석뿐이다. 지나친 자외선은 피부에 해롭지만, 매일 비타민D 합성을 시켜 내 정신건강을 지켜주니  간식 사는 보람이 있다.  적은 수업료지만 받으면 이 녀석을 위한 간식과 나의 먹거리를 챙길 수 있으니  우리의  행복지수는 여러 단계 올라간다.     

       동네  공원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인공 호수와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고, 주말엔 화려한 음악분수 쇼가 펼쳐지고, 무대 위에선 버스킹 공연이 있으면 둘씩  손잡고 앉아 구경을 하며 박수를 치며 흥을 돋운다. 역시 쾌적한 신도시에서 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다가온다. 대출이자에 대한 심적 고통은  이럴 때  사라진다. 여린 나뭇잎들이 한 뼘씩 삐죽거리며 올라오지만 신도시라 그런지 아직은 큰 나무들이 많지않다. 오늘은 지니 말처럼 자외선 지수가 높아 선글라스에 모자, 게다가 양산까지 한 손에 들고 나왔다. 한 손엔 강아지를 끌고, 그 모양이 꽤나 우스꽝스러운지 운동 나오신 분들의 시선을 금세 사로잡는다.      

    철쭉처럼 생긴 연분홍 꽃들이 절정을 향해 피어난다. 얼마쯤 걷다 내 발걸음을 멈추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되었다. 다른 나무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 홀로 서 있는데,  이 나무에서 드리워진 큰 그늘 때문이다.자기 몸통의 두배이상이 되는 그늘이 나를 불러들였다.  해의 높이와 이동에 따라 그늘의 크기도 만들어지겠지만 유독 홀로 선 이 나무의 그늘이 길고 넓어 그곳에서 쉬고 싶어 진다. 1964년에 출판됐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소년에 대한 나무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 소년은 매일 나무를 찾아왔고, 소년이 오지 않으면 나무는 슬퍼졌다. 나이가 들어 나무를 찾아온  청년은 근심 어린 얼굴이었다. 돈이 필요하다니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배를 만들어 타고 돈을 벌러 나간다. 나무는 소년이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했다.  결국 노인이 된 소년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노인에게 줄 더 이상의 나무도 없었다.  다행이 노인은 더 이상 이제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한다.  대신 늙고, 지친 소년에게  나무 밑동에 앉아 쉬라고 한다. 나무 그늘에 잠깐 서서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나에게 그 나무도 친구가 되었다.  자주 찾아오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해본다. 늘어진 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그러라고 대답한다.  오늘날의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내 마음 쉬어 갈 한 그루의 나무가 내가 바라던 어릴 적 뛰놀던 마음의 들판이돼주고 자유를 준다.  코코가 이내  종종거리며  코를 풀밭에 킁킁거린다.

“그래 이제  가볼까?” 코코의 보조를 맞추려면 적잖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 일상은 여느 날처럼  특별할 것 없이 시작됐다. 나는 특별하니까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주문을 되뇌며  걷는다.  천천히 가, 라며 줄을 살짝 조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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