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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12. 2022

그날의 소음

 늦 봄


   적어도  일 년에  몇 번은 고향을 방문을 하게 된다. 올해 여든을 넘긴 어머니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 내가 태어나고 자란 옛 집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를 다녀오면 허전하고 복잡한 내면이 순식간에 치유받을 수 있다 . 내적인 치유가 가장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감히 내가 자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몇 달에 한 번은 다녀와야 직성이 풀린다.  십여 년 전에  근처 논에다 어머니를 위한 새로운 집을 지었지만 옛집은 50여년 전 지어져 이제는 낡은 모습으로  현재 마치 창고처럼 방치되어 있고, 어머니가 기른 감자나 양파 따위의 농작물들은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고향에 가면 항상 어머니를 뵙고,  옛집을 둘러보게되면 마음속으로 안부인사를 조상님들께 전한다. 제가 왔노라고 인사를 전하면 언제나 그들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듯해서 늘 마음이 안정이 된다.

   이번 봄은 여느 해 보다 특별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형제, 자매가 함께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고향에 도착한 날 저녁즈음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오니 온 사방에 개구리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주변 논에 모심기를 하기 위해 채워진 곳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의 소리였다. 처음엔 귀가 시끄럽게 느낄 만큼 소리가 너무 컸다. 문득 내가 어려서  자려고 누웠을 때도 이런 규칙적인 울림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이들었던 생각이 났다.   쩌렁쩌렁 울려대는 개구리 소리에  가족들은  시끄럽다는 표현을 쓰며 인상을 쓰기도 했고, 대화를 할 때 목소리를 더 크게 키워야 했다.

   그러다 점점 우리만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개구리 소리는 자연스러운 배경음악으로 자리했다. 개구리 소리에 대해 흥미가 생겨  핸드폰으로 녹색창에 검색을 해보니 개구리들이 서로 구애하며 짝을 찾는 소리라고 한다. 야생의 생명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연중행사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우리가 들을 방해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해하고 들으며, 그들의 소리가 무척 낭만적이게 들리기도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합방을 응원하기도 했다.

“ 어머 우리 자기 어디 있는 거야.?

“ 개골 양, 저는 어떤가요? 제 멋진 볼살이 너무 섹시하지 않나요.?”

이런 재미난 상상을 하며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기도 했다. 그들의 행사를 떠올리며  생명력이 넘치는 소리를 들으니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그대로 받는 듯해서 기운까지 나는 듯했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화음을 이루어 우주의  봄밤을 진동시켰다. 풀숲과 논에 생명체들과 우리는 그저  어우러져 그들은 그들의 날을, 우리는 우리의 밤을 술과 고기가 없어도 충분히 취할 만큼 즐겼다.  야생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꿈틀대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연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앉아있길 원하는 인간들에게 ‘지금처럼 그렇게 외롭게 혼자이길 원해?’라며 비웃는 듯했다.  내 귀에는 그들이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평소 내가 고민했던 삶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 생명들의 소리를 나는 전혀 알길 없으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그래 계속 말해봐, 라며 알은척을 한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휴대전화를 꺼내 음성 녹음을 했다. 1분 정도 녹음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 저녁에 ASMR로 잠들기 전 들으려 했다.

  아파트로 돌아온 날 저녁에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정말 그 소리를 재생했다. 소리에 볼륨을 약간 줄이고 들으니 훨씬 듣기 좋았다. 소리에 심취해 내 동거인과도  한참을 낄낄거리며 우리는 반복적으로 그것을 들으며 이야기를. 그냥 30분 정도 녹음을 해왔으면 그냥 반복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동거인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누구보다 많이 들어왔기에 내 이런 애착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며 공감해줄 줄 아는 따듯한 사람이다. 어느 여름날에 생명의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깜깜한 곳의  소리를 다시 들으니 그날의 기분이 살아났다.  그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우리는 둘만의 사랑을 나누었다. 우주엔 우리 둘만 존재하고, 마치 수컷 개구리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암컷 개구리처럼 말이다.  격정적이었고, 자연스러웠고, 황홀했다. 모든 자연의 생명체의 사랑은 그렇듯 아름다운 것임을 그날만큼 확실히 느꼈던 적은 없었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외롭지 않아,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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