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

by 김작가


온라인 서점에서든, 책 냄새가 그리워질 때쯤 종종 들르게 되는 동네 서점에서든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그 장소는 중요치 않는 것 같다. 만나야 할 문장을 가진 책과 독자는 결국 만나게 된다고 믿는다. 지구에 인류를 끓어 당기는 중력의 힘처럼 나를 자연스레 끌어당기는 그런 힘을 가진 책들이 어느 곳에나 있다. 그 책들이 드디어 내 책장에 한 곳에 자리하며 내 세월을 함께 버텨준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 책장 앞에 서보게 된 어느 날 알게 된다. 누군가의 책장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많은 근거를 책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책장 앞에 서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도 궁금하니까. 여러 분야의 책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소설과. 산문집을 즐겨 찾는다. 단편소설집은 각각의 단편마다 흐름이 끊어지니 이해하는데 더 많은 이해의 에너지가 소요된다. 갑작스러운 결말 앞에 당황한 경우도 적잖이 있다. 반면 장편소설은 읽다 보면 이해가 되는 결말을 맞이 하는 게 훨씬 내 쪽에선 더 명확해서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역사와 이야기가 만난 책들을 좋아한다. 역사에 전쟁이 빠질 리 만무하다. 시대가 불러온 이념 간 투쟁, 사랑, 예술, 젠더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이야기들 말이다. 이렇게 최대한의 집중력을 모으면 수백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가고, 끝낼 때 뿌듯함이 크다. 비로소 그 시대상황을 간접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팍팍한 삶을 내려놓고, 쉼이 필요할 때 내 손에는 산문집이 들려있다. 잠들기 전에도 주로 산문집을 읽는다. 많은 산문집들이 있지만 유독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써 내려간 글들의 매력에 빠지는 게 좋다. 소설가들의 일상의 사색과, 관찰 서술은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아한 문체라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문장들을 만나고 나면 마음이 약간은 들뜨고, 마치 내 삶이 아름답게 변주된 느낌마저 가져다준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 포함된 내용일지라도 소설가들의 산문집은 연필통에서 다른 연필을 쓱 꺼내 쓴 듯 그 문체가 말랑말랑하게 이야기를 엮어내서 읽기가 덜 부담스럽다. 소설이든 산문이든 모두 우리 삶의 한 자락을 쓱 베어내 보여주니 둘은 떼려야 뗄 수없다.

오늘도 나는 북노마드로 살고 있다. 매일 온라인 독서 카페를 하루 열 번 이상 들어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해보려 글을 쓰기도 한다. 격주에 한 번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추천하는 책들을 검색 몇 번으로 중고든, 신간이든 나름의 판단을 통해 구매한다. 이렇게 모인 책들은 아마 나의 노년까지 함께 할 친구가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책을 떠올릴 때 친구라는 말이 생각난다.

친구라는 관념은 다양하게 적용된다. 학창 시절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의 여학생이었다면, 이후 성인이 되고 직장에 다니고, 지금에 이르면서 친구란 나이는 같지 않아도 되지만 취미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 커피 한잔 같이 할 사람이다. 인생 후반부에 친구는 또 어떤 모습일까? 공원을 함께 산책할 수 있는 누군가이면 좋겠다. 그들도 나도 아픈 다리를 쉬어가려 근처 벤치를 찾아 따끈한 햇살을 쬐며 나른한 표정을 하고 있을 테다. 여기저기 쑤쎠오는 신체의 통증과 견디며, 자식, 손주들 걱정을 하며 지나온 삶에 대한 회환과 추억을 서로 공유할 사람이겠지. 그런 날에도 책이라는 이 녀석이 내 한 손이나 무릎에 가까이 둘 수 있을 정도의 나쁘지 않은 시력을 갖길 바랄 뿐이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오디오북이 있으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 결국 나보다 더 오래 남을 것들이 책이라고 생각이 미치니 오늘도 책장에 먼지를 털어내고 가꾸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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