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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21. 2022

공유(ft 웰시 코기)

(강아지와 나)

     생명이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조그마하고 하얀 발을 사뿐히   집에 들여놓기  까지는 모든 것이 설렜다.  오랜 고민 끝에 가족들 상의 끝에 강아지를 입양하게 됐다.  조그만 생명은 태어난  3개월이 안됐다. 차로 이동 중에 멀미해서 토할  있다고, 가능한 흔들리지 않게 데려가라고 하셨고 아플까 걱정이 됐다.  시간 거리의 차를 타고 와서  멀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지 않고, 주인의 허락 없이   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내집이 그녀석에게 순식간에 노출되버렸다. 다행히도 집에 처음   저녁에 서럽게 울지도 짖지도 않고  작은 울타리 안에서 돌아다니다 몸을 뉘이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어미 뱃속에서 나와 금세 이별을 했을 탓인지 이제는 혼자가 익숙한 모양이다. 그럴 수가 있나?  의아했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를 데려온 입장에선  그런 행동이 받아들이는 우리를 그나마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잠을 설쳤다. 새벽에  아이가 깨서 낑낑 대거나 짖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부스스한 피곤한 얼굴로 거실로 나오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없었다. 행여 밤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녀석을 보니 밤새  , 오줌들이 울타리 안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새끼 강아지이다 보니 배변훈련과 강아지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하우스 교육이 필요하다. 그날부터 여러 영상들을 검색해서 보기 시작했다. 훈련사들이 보여주는 영상에서 교육은 백전 백승이다. 자신감이 생긴  강아지 키우기는 식은  먹기일 거라 생각한다.  사료를   손에 쥐고 우선 손에 냄새를 맡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을  들으면 잘했어,라고 하며 먹이를 주고 등을 쓰다듬는다. 어라, 도전해 보니 울타리 밖으로 나온 녀석은 일단  발로 돌진해온다. 다른   틈도 없이 맨발에 다가와 ,하고 물거나 옷을 물고 늘어진다. 옷자락을 빼내려 해도 좀처럼  것을 놓지 않아 나는 당황하고  일어나며  소리치고 움직이자, 흥분한 강아지가  발을 잽싸게 따라온다. 녀석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 내발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붙어서 일단 빛의 속도로 소파위로 몸을 던진다. 소파  나를 향해 앞발을 올리며    긁어대다가  미처 자신이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하니 발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 다행이다. 소파 위에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다시 검색한다. 새끼 강아지들이 호기심이 많다 보니 손발을 따라다니며 깨문다고 한다.   녀석을 데려오기 전에   나름대로 애견 카페도 가입하고, 강아지 키우는 영상으로 공부를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실전 앞에 쩔쩔매는 초보 티를 벗지 못하는 부모가 되고 만다.   그냥 무심한  지켜봐 오히려 나은  같다. 평소처럼 거실에 나와서 소파에 누워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서 내가 좋아하는 예능을 켠다. , 고개를 돌려보니 울타리 안에서 잠든 녀석을 보며, 티브이 소리를 줄인다. 거실에서 내가 느낄  있는 최대의 행복감을 포기하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온다. 거실에 나갈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잠이 많은  같다. 부산스럽게 짖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자마자 가족들과  재미있게 소통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반련견이라는 끈끈한 의미가 아직은 와닿지 않는 느낌이다.


    집에, 그것도  도시에서 처음으로  이아이도 환경이 낯설어 불편할 테다. 며칠간 잠도  자고  노는  보니 적응을 잘하고 있는  같다.  애견 용품들이 거실을 차지하고 어질러진 집안과 울타리 안에서 또는   거실에서 돌아다니는  녀석 때문에 우리의 신경은 초집중된다. 그도 집을 탐색하고 호기심을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집은 내게만 익숙한 공간일 테다. 당장 적응하기 어려운  오히려 나라는 생각이 든다. 보기엔 너무 귀엽고, 산책을 함께 하는 모습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현실은 다르다. 내가  손님 같은 가족에게    있는  사료주기와  치워주고 패드 바꿔주기가 거의 전부다.  귀찮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자 마음이 복잡하다. 이성과 감성이 싸우는 중이다. 피로가 몰려오자, 후회도 밀려오는  사실이다.


  저도 나도, 다른 속성을 가진 생명체로 살아왔는데 함께 공간을 나누고, 니거 내 거 없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처음부터 쉬울 리 만무하다. 저마다 자신의 공간을 침범받을 때, 불편한 마음은 당연한데 내색하기가 어렵다. 우리 집에 발을 들이 이 아이도 바뀐 환경에 힘들 것인데 그의 입장에서도 이해와 배려를 원하고 있다. 무언으로 몸짓으로 말이다. 새끼 강아지를 돌보면서 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들을 찾아보니, 사람이 그들을 안아서 위로 올리는 건  그들을 불안하게 하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를 안아 올렸을 때 그가 포근하게 느낄거라는  생각은 무지와 착각인 듯하다. 그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소통을 해 나가야 할까, 텔레파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은 지구 안에 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서로 다른 속성과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살아가며 누려야 하는 이곳 말이다. 과연 다른 종(種)간의 이야기만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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