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신지.(4화)

by 김작가

" 어머, 유진아, 화장실에서 선생님 부르면 어떡하니, 죄송해요, 선생님."


당황한 아이 엄마가 부엌에서 급하게 나오며 앞치마에 물기를 닦는다.


"어머니, 오늘 유진이와 읽은 책과 놀잇감들이에요, 이번 주에 배운 단어와 문장을 기억하도록 복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방문교육일은 분(分) 각을 다투며 돌아가는 일이기에 가방을 챙겨 서둘러 일어서면 상담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이 4시경 하원 후 미술, 발레, 피아노, 태권도 등등 예체능 수업과 시간을 쪼개 영어까지 하니 방문교사가 최대한 맞추고 그렇지 못하면 조율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바쁜 방문교사들이 이동하다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배려를 상대방에게 기대하면 언제가 피어오를 문제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어린아이들 조차 이곳에선 바쁘다는 사실을 그간 잊고 살았다. 경선 자신이 젊은 교사와 달리 나이가 들어 늦다는 말은 듣기 싫어 시간을 재촉하여 일이 분 일찍 도착하려 했다. 경선은 나서려던 걸음은 늦추며 말한다.


“어머니 이거...”


“뭐예요. 선생님?”


“어머니, 요즘 날이 차서요. 털 실내화예요.


"뭐 이런 걸 주시고, 감사합니다."


학부모에게 소개부탁을 하라며 회사에서 공동구매한 털실내화였다.

어머니, 수업할 친구 있으면 부탁드려요, 그 말을 끝내 뭉개고는 황급히 발을 신발에 욱여넣고 문을 밀고 나온다.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도 상대방의 만족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소개를 말하는 건 스스로도 민망하고 거절당할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경선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고는 자동으로 부채를 꺼내 힘주어 흔든다. 가방밖으로 삐죽이 나와있던 소개 전단지가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휴, 숨을 고르고는 언젠가는 다시 꺼낼 수밖에 없음을 직감하지만 아직은 안 되겠다며 전단지를 깊숙이 밀어 넣는다.


십 대였던 경선은 외국인을 만나면 겁 없이 말을 걸어보곤 했을 정도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영어를 좋아했다. 그랬기에 치수가 미국에 나가자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컸다. 경선은 밥벌이가 가장 어려운 남편 치수만 믿고 버티기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함에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인이 경선을 좋게 봐 소개한 아파트 관리 업체 매니저로 일했다. 아파트는 주로 아시아 이민자들이 몇 년 혹은 몇 달을 못 채우고 살았다. 월세기간이 만료되기 전부터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늘 벌어졌다. 퇴거하는 날 전에 연락을 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결국 퇴거날 마스터 키로 들어가 보니 보니 집이 엉망인 경우에 기함하게 하고 물러 난 적도 있었다. 문이 부서지거나 가구나 오븐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경우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 휴~, 또 시작이네. 제임스 청소업체 얼른 연락하고 빗자루 좀."


파티로 시작되고 폭력으로 얼룩진 듯한 흔적, 경선은 술과 약으로 보낸 그들의 환락의 밤들을 상상해 보았다. 애초에 타국에 오고자 했을 때의 목표는 오간데 없어졌다. 이사할 때 낸 보증금이 없다면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수리비가 더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민자들을 상대하는 일을 꺼리는 자리는 결국 힘없는 경선의 자리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같은 이민자들의 삶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를 아파트 관리자와 이야기해 봐야 해결은 되지 않았다. 경선은 난리의 현장을 볼 때마다 입주 전의 상태를 미리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경선과 함께 일하는 제임스는 남미출신 삼십 대였다. 근육질의 매끈하고 검은 피부와 사람을 볼 때 자주 가끔 눈을 찡긋거리는 습관으로 한때 갱단의 조직원이었다는 이상한 소문도 돌았다. 처음엔 경선은 제임스와 일하기 부담스러웠지만 여러 해 일 해보니 어디까지나 이방인으로 살기 위한 하나의 방책정도로 판단되었고, 사실 브리또를 좋아하는 귀엽고 성실한 동료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과장하게 되어있는 법이라고 치부했다. 제임스는 오히려 경선에게 든든한 존재였다고 볼 수 있었다. 임차인들은 몇 번 전화로 상대할 사람이 여자라 우습게 생각했다가는 이들이 제임스의 외모만 보고도 뒷걸음질 치며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기 직전의 전의를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한 젊은 동양인 남녀가 이사를 나가는 날이었다. 계약서를 통해 반려견을 데리고 들어오면 매달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매달 50불 아끼자고 퇴거날 눈속임이 드러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개냄새를 느꼈고 순식간에 이 쪽 저 쪽을 스캔해 보자 털들이 먼지와 엉켜 구석에 있는 것이 보인다. 저절로 코가 찌푸려졌다. 경선은 가지고 온 계약서를 내밀고 개를 키운 거였다며 매월 내야 하는 월세를 내지 않은 걸로 간주하여 계산한다고 한국말로 설명하자 이내 이런 답이 돌아온다.



"Sorry, I’m Chinese. Chinese. I don't understand what youare saing."


제임스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젊은 남자가 두 팔을 들고 뒤로 물러난다. 분명 미국 땅이든 어디든 숨길 수 없는 그들의 정체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경선만이 아는 익숙한 사투리가 강하게 베인 영어가 귀에 박힌다. 경선이 손에 든 서류를 살펴보려 하자 젊은 남녀는 눈빛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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