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라는 거 (7화)

경선과 동료들

by 김작가

경선이 소설에 푹 빠져 살던 청소년기가 떠오른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책 한 권이 뭉근하게 깊은 맛을 주듯 전해주는 마음을 위로하던 기억이 오랜 세월 그녀를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수업을 마친 후 오 분 정도 다양한 배경의 학부모들과 각기 다른 고민을 듣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온 경선은 책 한 권 집어 들면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날은 늦은 밤까지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깨져 덧나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운 무릎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았다. 다음날 회사 팀장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주은엄마일은 걱정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해 주라는 긍정의 내용이었다. 팀장이 말을 주은엄마에게 무슨 선물이라도 한 걸까, 복잡한 머리를 굴려보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기분이 종일 따라다녀서 화창한 날에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경선이 사무실 문을 열자 A교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 셋 키워서 인지 본래 그런 건지, 목청이 정말 크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이 그녀의 귀를 통과하면 본인 일이든 다른 선생의 일이든 얌전히 듣고만 있지를 못하고 과하게 맞장구를 친다. 사람들은 과하게 남에 일에 몰입하는 경향이 잇다. 한국에서는 더욱이 이럴 때 이방인으로 살고 싶어 진다. B선생은 매번 원피스와 투피스 차림으로 출근하는데 그 차림을 보니 교육하는 사람답다는 인상을 들었다. 그녀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는데 오랜 직장생활에 갱년기가 더해져 몸도 마음도 힘들다며 언제 이일을 그만둘까 하면서도 국민연금 나올 때까지는 다닐 거라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C샘은 십여 년 전에 이혼하고 딸을 키우고 있다고, 본인이 가장이라 돈을 더 벌어야 한다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어머니들에게 아이들 소개를 권유하며 수업을 늘여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출근날에 피곤한 얼굴을 하고 커피를 연이어 들이킨다. D선생은 남편이 공무원이랬다.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 아닌데, 아이들 키우고 집에 있다 보니 이상하게 몸이 아프단다. 그녀는 용돈벌이가 되더라도 집에 있는 거보다는 직장에 나오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건강을 위해 더 낫다고 남편이 등 떠밀어 나왔단다.


교육 후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자신의 음료나 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앉았다.


" 경선 샘, 어떻게 이 일 하시게 된 거예요? 생각보다 힘든데 괜찮으세요? "


궁금한 것이 많았던지 기다렸다는 듯 질문과 여러쌍의 눈빛이 경선에게 향한다.

구석진 소파에 등을 기대어 있던 A샘이 아이스아메리카노잔을 내려놓고 말한다.


"아유, 젊은 샘들은 이런 일 힘들어서 오래 못한다고요. 우리나 하는 거지. 저는 요즘 화장실 들를 시간도 없이 발에 바퀴 달린 듯 수업 다닌다니까요. 저는 방광염 왔었잖아요. 갈수록 태어나는 아이들은 줄고 있고, 수업의 질은 더 좋아져야 아이들을 다른 회사에 뺏기지 않는다고 저렇게 관리자들이 열변을 토하잖아요. 지들이 수업을 다녀보라지, 이러니 누가 버티겠냐고요."


"지난번 들어온 대학생들은 또 어쩌고요. 숙제할 시간도 없다고 다른 일자리 알아본다고 무단으로 수업 나가지도 않는 바람에 우리가 그 수업 다 나눠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서,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는 대학생들 들어오는 거 반대예요. 아직 어려서 사회성도 부족하고, 상담능력도 우리보다 못하죠. 애도 안 키워봤는데, 제일 중요한 건 절박함도 없잖아요."


입을 열어 함께 같은 파트 합창이라도 하는 듯 그들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특히 여선생이 많아서인지, 경선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 경선의 남편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망해서 야반도주했을 거라는 것이다. 물론 경선은 모르는 일이다. 그때 옆구리를 툭 치고 나온 B선생이 자신은 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확신을 보이며 말했다.


"샘들 자아실현 몰라요. 안 그래요, 경선샘? 저랑 열 살 터울 나는 언니도 아이들 다 키우니 진작 일을 좀 시작해 둘걸 그랬다고. 저보고 할 수 있는데 까지 일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경선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지 가늠하지 못했다. 경선을 걱정하는 말이든, 까다로운 학부모에 대해 욕하는 거든, 경선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일터를 나오는 힘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빈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깊은 애사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은 더더욱 아니고, 품위가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사람들과의 동지의식뿐이라 일할 의지가 훅하고 꺾이지만, 그런데도 그들이 없다면 일할 의지는 더더욱 꺾일 것이다, 전장에서 함께 살아남아 만들어낸 전우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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