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과 치수(8화)

by 김작가

치수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딸 다은이 십 대를 굽이치는 언덕을 오르 듯 넘기고 있다고 느끼던 때였다. 한인이 많다고는 하나 여행지가 아닌 생존을 위해 산다는 것에서 이방인의 고단함이란 쉬이 어떻다 단언하기 어려웠다. 그 시기의 그들은 전쟁에서 온몸으로 파편을 막아내듯 치명상을 남기며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경선과 치수는 '후회'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지나온 십여 년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경선 역시 아파트 매니저로 일하며 세입자들의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분주하다 보면 일일이 다은의 마음 하나하나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다은과 친구 생일 파티에서 친구 부모의 별장을 빌려 일박을 하러 간다고 했다. 샌디에이고의 너른 바다가 보이는 앞에 이층으로 된 화려한 별장이었다. 거기서 친구가 서핑을 한다고도 했다. 다은과 친구들이 물놀이와 서핑을 배우는 장면을 떠올리는 일은 즐거웠다. 외동인 다은이 언제부턴가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던 차에 다은이 아이패드를 열어 별장의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보여주며 엄마, 엄마 하며 평소와 달리 애교를 떨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깊게 페인 보조개를 보며 또 금세 멀어져 갈 오붓한 시간이 아쉬워 붙들듯 딸을 꼭 껴안았다. 경선은' mommy'로 부르는 것보다 '엄마'라 부르면 마치 둘만에 달콤한 신호처럼 느껴지곤 했다.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었기에 딱히 여행에 대해 올라오는 불안은 지그시 눌렀다. 지프차를 몰고 온 다은의 친구와 아빠가 다은을 데리고 차를 타고 떠날 때, 아이가 뒷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 때만 해도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았다. 아니 그대로라도 좋았을 텐데.

이튿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불현듯 거부할 수 없는 불안감이 커질 즈음 다은과 함께 간다던 제이미에게 전화가 왔다. 또렷한 영어 발음에 목소리는 다급했고 떨렸다. 전화기 주변의 여러 소리가 혼잡하게 들리자 가슴이 한없이 두근댔다. 아무 말도 아직 듣지 않았는데 신체가 반응했다.


"Sorry, mom, Da-eun has problem. Can you come here soon,please!"


사건은 그날 밤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 SNS엔 ‘한인 고등학생들 별장에서 마약 사건’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파티 장소가 고급 주택이었고, 일부 학생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사실은 지역 사회에 충분한 충격이었다. 즉각적으로 그곳에 있던 몇 명의 남녀 학생들은 체포되었고, 일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행히 다은이는 사건의 핵심인물이 아니었고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것으로 풀려났고 퇴학만은 면할 수 있었다.


" 여보, 다은이는 사춘기잖아요. 사춘기 때 호기심일 수도 있고, 아무튼 다은인 모르고 가담한 게 다예요. 내 말이 틀렸어요?"


다은과 치수는 뉴스에서 미국에서 왕왕 일어나는 마약이나 총기 사건에 극히 분노하곤 했다. 그런 경우에 부모교육을 주로 탓하고 친구들을 잘 사귀어야 한다며 혀를 찼다. 목사로서 체면과 신도들에게 비친 신뢰에 금이 간 것 같아 다은을 볼 때면 늘 화가 나는 듯했지만 참아내고 있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친구들이 다 벌인일에 자신을 주범으로 몰아간다며 억울하다며 화를 내고 다투는 과정에 치수는 딸의 뺨을 때렸다. 경선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그날로 다은은 며칠간 친구집에 간다며 들어오지 않았다. 경선이 다은을 달래 데리고 들어온 후로, 그들은 보이지 않는 투명막이 생긴 듯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특히 다은은 아빠이야기만 꺼내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불신의 벽이 그들 사이에 단단히 세워졌다.


성경을 인용한 치수의 설교는 나무랄 데 없었다. 언변의 은사를 받은 듯 늘 유창하게 말씀을 잘하는 치수를 경선은 그간 어느 정도 동경해 왔다. 그가 말쑥하게 차려입고 학처럼 우아한 손짓을 넣으며 말씀을 인용한다.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첫째와 둘째 가는 계명,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용서. 아까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눈을 쓱 닦고는 경선은 그날따라 여름치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센 건지 한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치수를 차마 보지 못해 곧장 일어나 에어컨 날개를 위로 향하게 올린 후 밖으로 나가며 다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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