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동상이몽(10화)

by 김작가

다은에게 문자를 입력했다. '요즘도 일하느라 늦니? 바빠도 밥은 챙겨 먹어, 밀가루 너무 먹지 말고, 요즘 암 환자가 그렇게 많다더라. ' 삶은 내 것이나 피할 수 없는 내 주변의 것들로 가득 차있다.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걱정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 경선의 손은 멈칫한 후 이내 문자를 닫아버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경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반도체 회사에 취직한 후 인턴쉽 과정이 잘 마무리되었고, 계약직으로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은은 대학을 가능한 동부로 가고 싶어 했다.


"이해해, 엄마도 미국에 와서 살고 싶었었어. 스무 살에 멀리 나가보는 건 문제가 아니야, 보통 그 나이 때는 다 그렇지."


경선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물을 삼키지 못하는 착한 딸에게 스무살의 그런 생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다독였다. 아빠에 대한 원망, 자신을 이해하기보다는 체면치레에 급급했던 아빠의 모습에 크게 실망이 있다는 것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경선을 포함한 부모라는 틀에서 달아나려는 다은을 이해하고 싶었다, 지금의 그 애도 언제 가는 경선과, 치수와 더 가까이 오겠다고 말하는 날이 있겠지 하고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긴 이야기는 그들에게 아무 득이 될 게 없다고......


서울에서 원룸을 계약할 때 살림들은 모두 빌트인이라고 했다. 월세가 5만 원 더 비싸긴 해도 가전을 새로 들일 필요가 없으니 흔쾌히 계약을 했다. 하지만 경선의 몇 가지 상하의만 붙박이 장에 걸려있을 뿐 남은 옷들은 가져온 두 개의 케리어에 그대로 두었다.

출근 날 아침 열 시. 교육의 시작은 영유아 교육시장의 어려운 현실에 대응하는 비전 설계에 목표를 두었다. 영어교육의 방향성과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교사들의 자세와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 및 상담기법등을 소그룹으로 팀을 나누어 교육을 진행했다.

" 선생님들! 요즘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시죠? 앞으로 영유아 교육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망해가고 있나요? 천만예요. 엄마, 아빠만 계신 게 아니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삼촌, 돈 나올 포켓이 일곱 개예요. 아이 하나 공부시킨다고 일곱 명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니 우리의 수업은 앞으로도 질을 높인 놀이수업, 프리미엄 수업을 지향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지점장은 새 된소리로 선생들의 눈과 귀뿐 아니라 호응을 끌어내려 목청을 올렸다. 경선은 한국의 젊은 엄마들이 모국어도 완성되지 않은 개월 수에도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까지 가리지 않고 수업을 받기 위해 집으로 교사를 부른다는 걸 알고 놀랐다.


다은은 얼마 전부터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미국사람이라는 말에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실망을 했다. 한국으로 들어와 같이 살면 어때? 너는 외동딸이니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엄마 나 미국에서 결혼하고 거기서 살 거야. 단칼에 거절하면 나쁜 년! 아니면 그래, 네 인생이니 네가 원하는 대로 엄마는 늘 응원해. 여러 답을 달아보면서 모든 게 부질없다고 생각됐다. 자신이 다은 어렸을 때 셋방을 전전하며 포대기에 아이를 업어 키우며 반찬 값 걱정하던 때를 떠올렸다. 다은이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고 육아와 교육비를 감당하느라 젊은 세월을 일하느라 애쓰는 걸 봐야 할 테고, 모두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차라리 한국에 오지 않는 게 낫다고.


보이스 톡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몇 번 통화가 되지 않았더니 치수에게서 연일 문자가 알람처럼 날아왔다. 멀리까지 가서 무슨 고생이냐고. 사모님은 언제 오세요? 라고 묻는 몇몇의 신도들에 대해 치수는 현재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라 오히려 골탕이라도 먹어보라는 마음으로 한동안 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평소 자신을 대하던 건조하고 딱딱한 음성을 활자로 읽으니 타지 않은 재에 다시 불을 붙은 것 같이 속이 뜨거웠다. 경선의 자신의 원룸을 구석구석 닦으며 자신이 정말 이곳에 와서 자신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에 빠졌다. 방바닥 여기저기 오래된 얼룩이 점차 희미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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