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하추핑 모르세요?'
"하트핑요?, 그게 뭐예요?'
"그럼, 시나모를, 마이멜로디는요? 하아, 티니핑 모르고는 안 되는데요! "
경선을 제외한 다른 샘들은 다들 아는 듯한 얼굴을 하고는 경선을 보며 히죽거린다. A샘은 곧장 핸드폰 검색을 마친 후 현란한 핑크색 요정들이 춤을 추는 영상을 보여준다.
"아, 유행하는 캐릭터인가 봐요?"
"샘, 피카추 아시죠? 요즘 포켓몬스터도 다시 유행이잖아요."
"피카추 알죠. 우리 딸 어려서도 인기 있었거든요."
A샘은 자신의 가방에서 포켓몬 문구세트를 하나 꺼내자, 파란색 연필, 자 위에 피카추가 경선에게 인사를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B샘이 벙벙한 표정의 경선 편을 들어준다.
"에이, 뭘 또 그러세요, 샘 한국 오신 지 얼마 안 되셔서 그렇죠, 샘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잖아요. 경선 샘 딸은 다 컸잖아요."
그렇다. 역시 한국의 영유아 시장에서 자신은 너무 나이가 많고,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싶어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하추핑 모르고도 사는데 지장 없었는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어보지만 결국 경선은 그날 샘들이 알려준 대로 인기 있다는 인형과 문구류, 맛 보다는 케릭터가 우선일듯한 젤리까지 한가득 주문하고는 만족했다. '이정도 쯤이야. 모르면 배우면 되지, 내가 누군가. 미국에서 그 까탈스럽다는 온갓 인종들을 다 상대했는데 말이지.' 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한국의 극성스러운 엄마들,수업할 때마다 최대한 가까이 귀를 쫑긋하여 수업을 참견하는 엄마들이다. 지난 번 깐깐하기로 유명했던 주은의 엄마는 경선이 수업을 하게되자 갑작스러운 교사 교체를 불만삼아 당장 그만두겠다고했으나 팀장이 방문해 지켜봐달라고 사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이후로 주은엄마는 수업에 맞춰 굳이 병원에서 일찍 퇴근해 수업하는 걸 지켜보고 이후 상담까지 받고 나서야 휴회한다는 말이 들어갔다. 경선이 출근한 날, 동료샘들의 탄성을 자아 낼 고급스러워 보이는 색색깔의 대형 꽃 바구니와 땡큐 카드가 경선을 기다렸다. 지점장은 꽃바구니를 보란듯이 교사들을 향해 흔들어대며 말했다.
"보셨죠? 이게 현실입니다, 엄마들 마음 손바닥 뒤집히는 건 한 순간이에요. 교육은 서비스입니다. 엄마들 마음을 잡으셔야 해요!"
경선을 향한 환대에 자신은 몸들 바를 몰랐다.경선과 주은집에 살고있다는 필리핀에서 온 베이비시터 에이프릴과 발음의 차이를 인정하고 아이를 키워온 경험이 있어서 주은을 다루는 유연함에 어느정도 만족했다는 말을 팀장에게 전해왔다고 했다. 경선은 주은엄마의 일관성 없고 교양없는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런 경우라면 다시는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팀장은 주은 엄마의 행동에 그럴 수 있다며 사과라 생각하라고 받으라며, 경선샘은 좋겠네,라는 말만 연거푸 반복했다.
띵동!
일곱 살 현이는 작년부터 영어 알파벳과 음가를 익히고 있지만 쉬운 단어조차 쓰는 걸 어려워했다. 한글 떼기와 영어 파닉스를 동시해 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경선은 몇 번 현이 엄마에게 말을 했다. 수업으로 방문했을 때 현이 엄마는 평소처럼 인사를 했지만 싸늘한 말투였다. 현이는 받아쓰기를 하는 중에 단어조합이 마음대로 안 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없이 느리게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 받아쓰기 중이에요."
경선은 놀란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아이와 경선을 번갈아 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문을 무심히 닫았다.
" 현이야,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서 써."
경선은 분명 놀았을 아이를 달랬다. 입을 삐죽거리던 현이는 애꿎은 연필심만 부러트리고는 그 이후로 아무것도 더 이상 쓰지 못했다.
"선생님, 현이가 파닉스가 너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2주 전부터 주 3회 어학원을 등록했는데 이번 달까지 수업하고 그만할게요."
마주 앉은 현이엄마가 유독 붉게 바른 긴 손톱으로 탁탁 책상을 두드리는데. 경선에게 와닿는 그 진동은 점차 커지며 신경이 온통 거슬렸다.
"어머니, 일 년 넘게 한 건 놀이수업이었고 파닉스는 작년 일 년 정도 했는데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복습 부탁 드린다고.... ..."
현이 엄마의 눈은 휘몰아치는 듯 잠잠한 듯 태풍의 눈을 닮아있었다. 입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듯 작게 내뱉은 목소리는 허공에서 부서지고 모든 게 교사 책임이 되는 순간이다. 미리 속으로 대답할 말을 찾아보지만 더 이상통할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이제 수업에 그만 둘 학생이 또하나 늘게 된 셈이다. 하, 어쩐다...... 며칠 후 경선의 차월휴회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 팀장은 난색을 표할 것이 틀림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석진 모퉁이를 돌아 익숙한 편의점을 향해 뒷골목을 걸어가자 차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양이가 자신을 향해 동그란 눈을 더 크게 키웠다. 밤이라 연녹색의 커진 눈이 순간 섬뜩하기도 했지만, 경선은 멈춰서 시선을 유지하자 자신에게 느리게 움직여 가까이 다가왔다. 경선이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와 목덜미를 긁었다. 고양이는 좋은지 땅바닥에 배를 뒤집었다. '이런, 너 개냥이구나, ' 하고 작게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말했다. 미국에서 봤던 길고양이들은 자신에게 한 번도 다가오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 올라왔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아이들 수업에서 주려고 사놓았던 힘이 솟는다는 '백두장사소시지 '를 까서 그에게 주자 날름 받아먹었다. 다행히 고양이는 길거리에서는 그다지 주린 적은 없는지 배고 홀쭉하지는 않았다. 묻은 털을 털고 일어나니 갸르릉 소리를 약하게 내며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지만 쉬이 따라오지는 않았다. 어둑한 뒷골목을 걸으며 이르게 찾아오는 한국의 봄기운을 느꼈다. 한국에서 봄에 보았던 꽃들, 오래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던 민들레, 산수유, 목련이 모습을 드러내면 한국에서 다시 맞을 새로운 봄이 꽤 자신에게 안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엽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고양이의 안온한 봄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