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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Dec 19. 2019

수업하는 것이 미안한 선생님

2019/12/19

 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사론>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책 속에 들어있는 한 가지 에피소드 때문이다. 한 어른이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것이 달이란다."라고 하였을 때 아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인지, 저 하늘 전체가 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너무 어른들의 주관대로만 생각했구나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올해 2019년,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개정되었다. 교육과정이 개정된 이유는 조금 더 유아중심, 놀이중심을 추구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물론 유아교육에서 유아중심, 놀이중심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에는 '진짜'놀이와 '가짜'놀이가 있다는 사실. 자세한 내용은 EBS 놀이의 반란 방송이나 서적을 참고하면 좋다. 이미 유아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은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교실 현장에서는 실천하고,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디 아이들 고유의 놀이 그 자체를 존중하는 자세로 돌아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이미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딜레마를 겪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번 달 생활주제는 '겨울'인데 막상 아이들은 자동차 놀이를 즐겨하는 것이다. 그럼 겨울철 탈 것(짜 맞추자면 썰매와 같은 것들)으로 연계하여 어떻게든 생활주제와 연관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분명 교사의 의도적인 놀이 흐름이 아닌가? 언제 아이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가? 혹여 그렇게 썰매놀이를 시작했더라도 그것이 과연 아이들의 '진짜'놀이였을까?


 사실 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주어진 숙제들이 많다. 그 날 그 날 해야 하는 활동지가 있고, 미술작품이 있다. 왜? 한 학년을 마무리할 때 가정으로 결과물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본래 자기가 몰입하고 있던 놀이의 흐름을 끊고, 그 날의 활동지나 미술작품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또 한 가지의 숙제는 선생님의 수업에 바른 자세로 앉아 열심히 듣고,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나의 관심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유아기에 바른 자세로 앉아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차라리 공룡이나 로봇, 만화 주인공 이야기라면 두 눈을 반짝이며 들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보따리가 한가득일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고, 어떠한 활동을 계획하는 것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다. 유아들에게는 어떤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거나 대단한 예술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아기에는 그저 의미 있는 경험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주목표가 된다. 느끼고, 알아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높은 연령일수록 그 목표는 더 세분화되고, 구체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의미 있는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자 했을 때, 가령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풍부한 언어 사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겨울'과 같은 생활주제로만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교사들은(혹은 많은 어른들은) 꼭 교과서나 지도서를 따라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유아들이 한참 관심을 갖는 애니메이션'겨울왕국' 이야기나 한 아이가 가져온 장난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아마도 유아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최대한의 언어를 활용해서 말할 것이고, 듣는 아이들 또한 친구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친구가 사용하는 단어를 맥락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수업과 활동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내가 계획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때 이끌려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의 생각과 시도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하루 일과가 교사 주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많은 요인들 때문일 것이다.


 교육적 트렌드도 점차 학습자 중심으로 바뀌어가고자 한다. 유아교육은 그래서 더욱 유아를 중심으로, 그들이 펼치는 놀이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제는 나도 억지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느라 지친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두 눈을 반짝이며 한 가지라도 더 시도해보고 깨우치고자 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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