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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1. 2018

프롤로그.

Prologue.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면 좋겠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갖게 된지 몇 해가 흘렀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일이 점차 손에 익어가기 시작했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는 그 여유가 지독한 지루함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온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찾아온 ‘여유’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했다. 이 여유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내린 결정은‘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였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한 가지가 ‘글은 언제든지 쓸 수 있지 않느냐’였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것은 돈벌이가 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취직도, 결혼도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어야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며 공감하는 일에 게을러졌고, 생산적이지 못한 일은 무가치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돈을 계산하기에 바빴고, 그러다보니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반복적인 일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저 편하고, 안정적이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도 직업을 갖게 되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아이들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노키즈존’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출산율은 갈수록 낮아지며, 개인의 삶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나와 무관하다시피 했지만 곧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직접 대하기 전 나는 그들이 그저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엎지르고, 부수고, 망가뜨리며, 떼만 쓰는 천방지축의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도전하고, 탐색하고, 관찰하기를 반복하며,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도 없는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부끄럼 없이 드러낼 줄 아는 그들은 맑은 영혼임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무언가를 깨닫고,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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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부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나이어린 교사는 스스로 고민하고, 성장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교사로서 나는 전문성을 갖추고 부모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며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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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엄마라면, 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어 미래에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 편지를 적어보기도 했다. 처음부터 엄마나 아빠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나의 아이를 염두에 두다보면 현재 나의 마음가짐이 또 달라지지 않을까, 후회하는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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