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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6. 2018

한 순간 닫아둔 문을 두드리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용기

 자주 사색에 빠지고, 감성에 물들어갔던 마음의 문을 어느 한 순간에는 굳게 닫아두었다. 그 문을 열어둔 채 생활하기에는 매일이 벅찰 것 같았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것 같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부분에 마음을 쓰고, 애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해주는 일. 누군가 떠안은 일이 너무 많을 때 조금이라도 일을 대신해주며 부담을 덜어주는 일. 누군가 흘리는 눈물에 가슴 아리며 그 아픔을 함께하는 일. 상대방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충분히 헤아려주는 일도 어찌 보면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사라는 직업이 별도로 필요한가보다.

 이제는 회피하지않고 조금씩 마주할 때인 것 같다. 사람이 로봇처럼 딱딱하게 계산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직업을 갖기 시작하면서 글쓰기를 뜸하게 했었다. 근래에 들어 글쓰기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미고, 울컥하는 때가 생겼다. 한 동안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 한 켠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나의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상은 반복되고 있었다. 뭐랄까, 하루 중에서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정도라고 하면 되겠다. 내가 무엇이 힘들었는지, 어떤 걸 느꼈는지, 후회되는 점은 없는지, 잘 지냈는지와 같은 안부 인사를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저 그런 일상을 흘려보내고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도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직면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강단 있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맨 얼굴을 오롯이 직면할 수 있다. 자신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감상하듯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구석구석 반짝이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으로 인해 반짝이기도 하고,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그 안에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일부러 ‘힐링’을 위해 자연을 찾기도 한다. 굳이 먼 곳에서 찾지 않아도 바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있고, 별이 있고, 달이 있다. 왜인지 모르게 사람이 그러한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상에 젖게 된다. 그래서 옛날 시조에서도 달이나 해, 꽃과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지금은 많이 어색해져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게 어느 순간부터는 그다지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색에 잠기는 것은 진지한 일이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것은 눈물이 많아지는 일일까?


 그러한 일들이 남들로부터 숨어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닌데 어쩐지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나도 모르게 진지한 사람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쉽게 울고, 쉽게 화내고, 쉽게 웃는 단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저 두 가지는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숙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외부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것도 성숙의 과정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다른 사람 여럿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사색에 잠기거나 감수성이 예민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알고, 주어진 상황에서 결코 피하려하지 않는다.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한 순간 굳게 닫아둔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으니 잃어버렸던 감성 찾기에 나서보려고 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쏟아내고 싶고, 무엇이든 어여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어린 아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물정을 대하는 것처럼 딱 그런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로부터 자신을 이입해보기도 하고,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조금 더 진실 된 자기 모습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고 안도하고 싶은 것이다.
-2018.06.


 요즘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출연자가 하루 동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단지 그의 일상 자체만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 단순히 밥을 해 먹고,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는다. 사람들이 이런 ‘리얼’한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37명을 대상으로 ‘관찰 예능 열풍’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관찰 예능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좋아한다’라는 응답이 93.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그 인기 비결로는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해서(63.5%)’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중앙일보, 2018/06/27)

 사람들은 TV프로그램이든, 책이든 무언가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하며 안도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쉽사리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고, 아닌 척 가볍게 넘기기를 반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욕구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일상에서도 안정감을 찾으려하는 게 아닐까.


 나와의 솔직한 대화를 가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굳이 겉으로 드러낼 필요도 없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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