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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28. 2018

떠나보낸다는 것

굳이 그럴 필요는 앖어

절벽 아래로 아스라이 늘어져있던
그 수많은 질긴 끈들을
놓아버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처음이 어렵고 아플 뿐
놓고 놓아버리다보면
눈물로 애쓰지 않아도
그 다음은 그저 받아들여지던 걸
-2016.02.

 시간이 흐를수록 연락하기를 뜸하게 하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너무 무심한 일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보통은 사람들이 점점 연락을 뜸하게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연락을 뜸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아주 가깝고 편안한 사람이 아니면 먼저 연락을 취하는 일이 없다. 전화 통화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종종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은 탓일까.


어떤 강연을 들었던 일이 있는데 전화 통화를 길게 하는 사람과 짧게 용건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성격 차이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했다. 친밀감을 더 우선시하느냐, 실용성을 더 우선시하느냐와 같은 선택의 차이랄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 ‘너 참 정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몇 달, 몇 년을 줄을 이었고, 조금만 더 지나면 이건 나를 괴롭히는 죄책감으로 자라날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외쳤다.


‘그게 뭐! 그게 무슨 죄야?
그게 꼭 나쁜 거야?’

 어쨌든 나는 일상 속에서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전부 내 곁에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말이다.

 서점에 가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이 무수히 많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책들 속에 수많은 솔루션(solution)이 있지만 내가 찾아낸 해답은 이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무심해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나의 무의식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주변 상황으로부터 느끼는 체념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인간관계로부터 ‘체념’과 ‘무심함’을 택한 것이다. 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누군가를 추억하고, 그 추억에 젖어 기뻐하고, 슬퍼하며 눈물 짓는 일. 그 때 그런 말을 하지 말 걸, 그 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 걸, 끊임없이 자책하고 후회하는 일.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나는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이라고. 내가 사는 오늘은 곧 다가올 내일을 만들어낼 거라고. 그러니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없이 자기암시를 되뇌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추억하며 감상에 젖어 있거나 후회하는 일은 오늘과 내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외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오랜 시간을 할애하면 일상이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나간 일,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 스스로 ‘불필요해.’하고 이야기하면서 외면했던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울고, 웃었던 일들은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내기 시작하는 짧은 순간부터 불필요한 과거가 되어버린다. 잊고 살아야하는 일은 잊고 사는 것이 맞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실감하면서 말이다. 끊어낸 인연은 곧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경험은 곧 기억에서 추억으로, 추억은 곧 오랜 과거가 되어 점차 잊혀진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일까? 그를 스쳐지나간 무수한 사람들과 그 안에서 벌어진 무수한 사건들을 말이다. 한 사람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겪은 갖가지 상황들은 현재 그의 모습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만의 일상에 깃들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정 없는 일이라며,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누군가와의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했다. 여태까지 대했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서 때로는 애써 붙잡아보려고도 하고, 스스로 밀어내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는 일들이 있고, 때로는 놓아버려야 하는 일들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연’이야말로 사람의 힘으로는 진정 이룰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생애는 유한하고, 그 말은 곧 얼마만큼의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성격이 다른 만큼 갖고 있는 시간 또한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일분일초가 아깝게 느껴질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제와 오늘이 별 반 다를 바 없는 하루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후회의 감정에서 그 주체는 주로 ‘사람’이 대상이 된다. 조금만 더 잘해줄걸, 그렇게 못되게 굴지 말았어야했는데, 외면하지 말았어야했는데……. 조금 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 해드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시지는 않는다고 하시며. 우리는 인연을 대할 때에 조금이라도 진중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은 채 일상을 살지만 종종 그 사실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땅을 치고 후회하며 평생의 눈물로, 상처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대할 때에 최선을 다할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떠나보낼 때에는,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되새겨볼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그래, 그래도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함께했던 순간들이 있고,
여러 장면들 속에서 오고가던 대화
그리고 수많은 표정들, 수많은 풍경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 나를 떠나간 사람들
그 모두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그 모든 추억들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으리라.
다시 되돌아가도 그 날, 그 장면 속의 나는
변함이 없으리라.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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