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유아기에 이루어지는 생애 초기 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발목을 잡는 수단이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혹여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기도록 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말하는 위인들의 영유아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과연 그들 전부가 마땅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으며 중요한 경험을 했을까? 누군가가 갈등 상황을 어떻게 언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으며 평상시에 자연과 친숙하며 마음껏 뛰어놀았는지, 수나 언어, 예술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고른 경험을 했는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전쟁 상황 속에서 영유아기를 보냈다면? 반대로, 우리 사회의 범죄자들은 모두 불행하고도 부적절한 영유아기를 보냈을까? 부모 또는 온전한 주양육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들은 전부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변화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마땅히 경험하고, 배워야 할 것들을 반드시 인위적으로 제공하고 마련해 주어야만 발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루소가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들은 자연 그대로, 스스로 잘 자랄 힘을 갖고 태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른들이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린 시절에 불행한 일이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도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 어디가 조금 아팠다고 해서, 가정환경이 조금 온전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섣불리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러한 선입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나 또한 흠칫 놀랄 때가 있어서 늘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칠 때가 많다.
어린 시절이 인생을 좌우하는가?
위 제목은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성인발달 연구과정을 기록한 도서 <행복의 조건>의 목차 중 하나를 인용한 것이다. 영유아발달 연구자료에 익숙한 내가 문득 성인발달 연구자료를 살펴보게 된 것은 조금 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 전 생애에 걸쳐 행복한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영유아기를 잘 보내야만 앞으로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적절한 시기에 교육과 지원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줄곧 불행하게만 지낸다는 말인가? 영유아기에 겪은 실패와 낙담의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인가?
과연 어린 시절은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좌우하는가? 조지 베일런트의 연구에서 드러난 결론은 훌륭한 노년기를 보낸 사람과 최악의 노년기를 보낸 사람의 유년기를 비교해 보았을 때,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유아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유년기를 어떻게 보내든 최종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면 영유아기에 이루어지는 교육이 갖는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위 연구에서 비교 대상이 된 두 사람의 유년기는 어떤 식으로든 영유아기의 결정적 시기에 언어를 습득했을 것이고, 사회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영역에서 발달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늑대 소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기에 습득해야 할 지식이나 생활습관을 배우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알아야 할 것들, 마땅히 습득해야 할 것들을 조금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유아교사의 역할일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커가면서 조금 더 복잡하면서도 구조화된 삶의 형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유아교육기관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생활에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그 사람의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생활습관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복잡하고, 무엇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기 때문에 정답 또한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하나의 직업으로써 유아교사들은 그들이 만나는 유아기 아이들을 전문가로서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면 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미래 또한 암담할 것이라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언제, 어떠한 계기로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정말 복잡하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다수의 생각과 경험을 표준으로 여기며 아이들을 대하고 사람들을 대한다. 세상에 꼭 이것만이 맞으며, 꼭 당연한 수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교육은 오로지 '그 아이'만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결론도 짓지 않고,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않으면서 항상 가능성만을 내다보며 다가가야 한다. 교사든, 부모든, 친척들이든, 주변 이웃이든, 아이 스스로든 어느 누군가가 어떠한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의 인생이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헤쳐나갈 줄 알고, 스스로 즐겨하는 것을 찾고,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