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픈 만큼 어긋나게 된다
내가 초임교사였을 당시 나이 23살. 딱 20살 차이가 나는 3살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 일과가 어색했지만 조금씩 적응해나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해 나가듯이 나도 함께 적응해가던 중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아보았지만 금방 익숙한 일과가 되었고, 아주 작은 아이들이 나를 보며 웃고, 다가와주는 것이 참 예뻤다.
처음 어린이집에 근무하면서 느꼈던 건 누구라도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맞이해서 좋았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차별을 당하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다른 직종에 비해 꽤나 독립적인 업무 특성도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웃고, 아이들이 없어도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아이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같이 함께 한다는 건 늘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이유로 다투고, 걸핏하면 상처가 날 수 있어 노심초사해야한다. 아이들에게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잘못한 점을 생각해보게 하고,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즉각 움직여야하고, 엄한 모습으로 타일러야할 때도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를 가진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그 ‘적절한 태도’라는 것부터가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문제고, ‘교사’라는 이름은 어쩌면, 그 무게가 실려 있어 더욱 그렇다.
교사로서 너무 마음을 기울이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영유아기 때 아이들은 보통 자라온 환경, 가정으로부터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많다. 고작 2년차 교사이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지금만큼 개별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기가 점점 더 열악해진다는 것과 불합리해 보이는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손을 뻗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잘’ 대해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아이인데, 충분히 칭찬 받고 사랑 받으며 자랐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 순간 제일 답답하고 슬픈 일은 아이를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이 만큼 애 쓰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아줄까 하는 것. 이런 걸 보면 나도 많이 어린가보다.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다독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다들 저마다 힘들 텐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곤 한다. 내가 부족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수십 번 들고, 반나절을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더 고민하고, 이래저래 물어보고, 찾아보아도, 사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할 수가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고, 나는 그 아이들 앞에 ‘교사’라는 이름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무겁고, 책임이 따르는 일인 것 같다. 나의 이런 노력들이 그 아이들의 생에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6.04.
무엇보다 아이들 생각을 많이 하고, 아이들 위주로 생각했던 가장 순수한 교사로서의 모습이 보여 조금은 반성하게 되는 글이다. 정말로 가져야할 교사상이고, 본래의 업무 그대로에 충실한 모습인 것 같다.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 어린이집 또한 하나의 직장이기 때문에 연차가 늘어날수록 교육적인 부분 외적으로 고민해야할 부분들이 많아진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에 대한 순수한 고민은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초심’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른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의 신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해 주어야한다. 너무 많은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그와는 반대로 아이답지 않게 의욕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가 아픔의 신호를 보낸다면 즉각 반응해주고, 그 아픔을 감싸 안아줄 수 있어야한다. 무작정 아이를 귀찮아하고, 밀어낸다면 그 아픔이 더욱 커지고 흔히 말하는 문제행동이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결국에는 관심과 사랑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사례 중 한 가지는 바로 SBS<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다. 왜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아이가 이상하다고 아이 탓을 하게 되지만, 이내 어른들의 실수이고 잘못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어른들은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픈 만큼 어긋나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겪는 아픔을 충분히 어루만져주는 것, 그리고 그 아픔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마저도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모르니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아이도 마음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건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만큼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연히 어른들도 함께 성장해간다.
오히려 아이들을 보면서 더 배운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