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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May 15. 2019

유아교육의 현장

 교육현장,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부터 들었던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곤 한다.


 현재 만 4세(6세) 누리과정에서는 10개가량의 구체물을 세어볼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10 이상의 숫자에 관심을 가진다.

21, 22, 23… 그러다 선생님을 찾는다.

“23 다음은 뭐예요?”

교사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1, 2, 3, 그다음 숫자가 뭐지?”

하고 질문한다. 아이는 4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교사는 다시 질문한다.

“그럼 23 다음은 뭘까?”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만약 그 답이 틀린 답이더라도 다그치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유아교육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유아교사들은 아이들의 관심사에 민감하다. 몇 살까지 뽀로로를 좋아하는지,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은 무엇이고, 만화 주제가는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혹은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자주 가는 장소는 어딘지, 어떤 동식물을 키워보았는지도 알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곧 아이들의 동기유발이 되고, 소통의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어른의 관심사에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 아이들의 관심사에 어른들이 다가가야 한다.


 내가 있는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수업 시간에 너도나도 발표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물론 성격에 따라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발적이든, 누군가 시켜서든 발표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이런 모습일까?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침묵하기 시작하는 건지,  우리네 학교현장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 고민해보게 만든다. 내가 느끼는 유아교육의 매력이 학교현장에도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갖게 된다.


 앞으로 유아교육은 지금보다 조금 더 놀이 중심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한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아이들이 가꾸어 나가는 교실. 나에게는 그것이 이상적인 교실이고, 나 또한 함께 즐길 수 있는 교실이라고 생각한다. 예의범절이나 기본적인 생활습관처럼 굳이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을 힘들게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전혀.


 자꾸만 자꾸만 궁금하게 만들고,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서 마침내 스스로 세상을 공부하는 태도를 길러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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