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면서 치유받기_5탄
수잔은 오늘도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를 마감하기에 음악은 그녀를 위로하는 수단 이라기 보다 너무나도 조용해 숨이 막힐 지경인 침실의 공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백색 소음 같은 존재였다.
오늘은 또 뭘 들을지 생각하기 보다는 어떤 음악을 들어야 잠을 청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상황이니 더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래도 한때는 수면제 없이 잠을 청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에 비해서는 양호해졌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플레이리스트를 삭제하지 않고 추천해주는 음악을 머릿속에 지저분한 책상 위에 또 책을 쌓아 놓듯이 추가하고 억지로 잠을 청하던 그녀는 컴컴한 밤 오늘도 역시 눈에 익은 그 장소에서 눈을 떴다.
무성 영화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어디론가 또 향하면서 무기력한 발걸음을 옮겨 이리저리 길을 찾아 서성여본다. 하지만 늘 똑같은 그곳은 걷고 또 걸어도 역시나 그녀에게 생경 그 자체였다. 시간도 공간도 멈춘 채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무렵 어딘가에 쫓기듯 눈을 떴을 때 이름 모를 두통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이 그녀를 맞이할 뿐이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무엇에 쫓기는 것이었는지 왜 거기에 있었던 건지…… 찝찝한 뒤끝을 남긴 채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어 일시정지가 되어 있는 멜론의 플레이리스트를 살핀다. 오늘도 역시 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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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 어디쯤의 극장 한편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은 참 힘든 시간을 보냈네요. 하지만 당신의 그 아픔이 아름다운 노래와 누군가를 치유해줄 수 있는 음악으로 남았으니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제라도 아픔 없는 곳에서 잘 지내기를…...’
음악이 좋아 같이 있는 사람이 좋아 그녀의 삶을 알게 되었을 때 불쌍함, 연민,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수잔에게는 그 순간이 꿈같은 시간이고 일상에는 행복이 가득했기에……
그리고는 그녀의 일생도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수잔에게는 에디트와 같은 아픔이 주변에 자리 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비행기 사고로 잃었을 때 에디트는 마약과 술에 의존하는 나약함을 스스로의 몸에 장착해버렸다. 아마도 그것이 그 순간을 잊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수잔에게도 그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래도 현실을 놔 버릴 수 없었기에 온 도처에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있는 공간을 떠나야 함을 직감했을 때 그녀는 여행이라는 도피처를 실행에 옮기고 오스트리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그곳에서 숙소를 찾다 1시간여를 헤매고 겨우 도착한 그 작은방에서 수잔은 에디트를 우연히 마주쳤다. 흑백 공간 속에서 그녀와 수잔은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방황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서 눈물을 삼켜내기에 그 총량을 감당할 수 없어 소리로 눈물을 쏟아 내다가 잠에서 깼다. 수잔 옆에는 그 사람이 있었고 눈물에 다 젖은 얼굴을 감싸 안으며 괜찮다 두들겨 주었다. 하지만 그뿐 알아듣지도 못할 눈물에 뒤섞인 그 말들은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그녀에게 다시 와 꽂혔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침대 한 편은 사람의 흔적도 없는 깨끗한 공간 그 자체였다. 그리고는 또 그 노래가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잠에서 깬 수잔은 슬픔을 먹고 아픔을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또 잠을 청하고 또 그곳을 헤맨다. 그곳은 과연 어딜까. 그녀의 상처받은 영혼의 어디쯤일까…… 몽유병 환자처럼 공중을 걷는 듯이 이 순간이 꿈 속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고 시간은 멈춘 채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건지 느끼지도 못하고 또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