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엄마와 계획적이지 않은 합가를 한 후 처음 맞이한 추석이었다. 추석 전주에 아이가 코로나 걸렸다. 아무래도 아이를 케어하면서 내가 옮은 거 같았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시댁에 가기 하루 전에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느낀 건 '내 몸 아파도 누구 하나 나를 챙겨줄 사람은 없다는 것.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어미도, 시어머니도 '네 몸은 네가 챙겨야 한다'라고 하셨다. 참 그 말이 서러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서 출산을 하고도 온몸에 소양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몸에 진물이 나고 살이 찢어져도 도와줄 사람은 없었고, 오롯이 내가 다 감당해야 했었다. 그러기에 나는 내 몸을 지켜야 했기에 남편에게 '몸이 아프니 이번에는 시댁에 하루만 있다가 오자'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시댁에 가기 싫어서 그렇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버리고 화가 난 채 내가 쉬는 동안 아이만 데라고 시댁에 가버렸다. 정말 그때 화가 났다. 아이가 아직 코로나로 회복 중이었는데, 그런 아이랑 엄마를 떼놓다니. 본인이 병원을 가서 아이의 코로나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사건은 그다음 날 벌어졌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사건이다. 동생 내외가 추석 날을 보내고 본인의 집으로 가자마자. 나는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었다. 계속 식은땀이 나서 온몸에는 쉰내가 진동했다. 그래서 씻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미친년아. 네가 뭘 잘 못했는지 몰라?"
"내가 뭘 잘 못했는데?"
"이리 와 썅년아."
"욕하고 소리 지르지 말고 설명을 해. 내가 뭐를 잘 못했는지!"
나는 감기로 목소리가 안 나와 배에 힘을 주어 짜며 말했고, 엄마는 그게 힘이 넘쳐 난다고 생각했다.
" 너 때문에 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고!!!!!!!"
그리고 머리채를 잡아서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짜. 미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1년이 지나도로고 아직 몸이 회복하지도 못한 나에게 머리채를 잡고 이렇게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것인가? 나를 그냥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나 정말 몸이 아파!! 아프다고!!"
" 네가 아픈 게 뭐가 중요하냐? 그리고 이렇게 힘이 넘쳐나는데 뭐가 아파."
" 죽이려고 덤벼들면서 때리는데 맞고만 있어야 해?
난 처음으로 저항했다. 나도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제 더 이상 가만히 맞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함부로 하게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당한 것은 결코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극상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신이 건강할 수는 없었다. 나의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나를 무너뜨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엄마로부터 달라져야 했다. 머리채를 잡힌 엄마는 놀란 듯했다. 처음으로 우셨다. 내가 본인 머리채를 잡아서 울었는지, 아니면 뭐 때 물에 울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날 이후로 엄마랑 한 마디도 섞지 않았고, 옆에 스쳐 지나가는 것도 몸서리가 쳐졌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투명인간이었다. 엄마도 나에게 말한 마디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6개월 동안 나는 남편을 설득해 이사를 하기로 했고, 그 뒤로는 엄마와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1년이 된 지금 물론 쉽지는 않다. 복잡한 감정이다. 이상하게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연락해서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 것보다 연락을 하고 싶은 것을 참는 힘듦이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