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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Dec 30. 2017

연말에 쓴 일기

2017.12.29.금

활동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거의 평일이고, 주말에는 퍼져 있다보니, 2017년의 마지막 평일이 되자 오늘이 2017년의 마지막 날처럼 느껴진다.
수십수백억년에 달하는 억겁의 시간에 백년도 안되는 찰나를 살뿐인데, 2017년의 마지막 날처럼 느껴진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어쨌든 그렇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다.
누군가를 만나서 올 한해가 어땠냐는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했으나, 연말 술집의 시끄러운 소리는 질색이라서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는지 집에 오는 길에 평소보다 휴대폰을 자주 확인했다.

요즘에는 약속이 잡히면 나가서 만나고, 누가 불러주면 나가고, 이야기 하다보니 만남의 얘기로 흘러서 만나고 하며 소극적인 사교활동을 하고 있다. 누가 나를 불러주면 오 나를 잊지 않아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아직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서 다행이군 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쨌든 요즘엔 그냥 이러는게 편해서 이러고 있다. 음 딱히 요즘이 아니라 계속 이렇게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주변인들을 빨아들이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인간도 아니고, 이런 태도를 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정말 친하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이렇게 살다간 누가 내 결혼식과 장례식에 올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에라 뭐 작은 결혼식 하지 뭐. 어차피 죽어서 없는데 장례식에 누가 온지 알지도 못할거 뭔 상관이냐.


집에 와서 예능을 보며 저녁을 먹고, 택배를 찾고, 책을 좀 보고, 도대체 이놈의 먼지는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네 라며 바닥을 닦고, 밤이 어느정도 깊으니, 지금은 사람들이 신나게 놀다가 대중교통도 다 놓치고, 취한채로 택시를 잡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길 바라고 있다.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그 모습을 어딘가에서 내려다보며 ‘거봐라. 오늘 같은 날에는 일찍 집에 가야지. 캬캬캬’하며 비웃고 싶다. 이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올해 연말은 이렇게 저렇게 보내고 있고, 작년에는 잘 생각이 안나는걸 보니 별거 없었던 것 같고, 재작년에는 아 그래그래 거기를 갔다 왔었지, 이야 그게 벌써 2년전이네. 재재작년에는 아 맞아 그렇게 보냈고. 오 어찌저찌 살고 있네.


며칠 뒤면 35살이다. 
35살이 금방 됐으니까, 아마 70살도 금방 될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있을랑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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