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온 곳에 대한 왠지 모를 끌림
하루 종일 포르투에 있는 마지막 날. 가장 좋았던 것을 다시 한번 즐기고 싶었다. 트램타고 바다로 갔다.
나에게도 바다는 휴양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해변이 아닌 방파제와 등대가 있는 곳으로 가면 옛날에 바다가 왜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느낌이 오긴 한다. 네이비 색상의 엄청나게 많은 물이 지평선까지 일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막막하고 압도적인 느낌이 든다.
지금이야 해양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됐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깊이가 어느정도인지, 저 끝엔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을테니 그들의 공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공포를 넘어 닻을 올리고 돛을 펴고 출항한 것을 생각하면 인간도 참 신기한 동물이다(식민지 개척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님). 그냥 육지에서 대충 그럭저럭 만족하며 사는 방법도 있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을 그렇게 기를 쓰고 떠나다니. 그들을 이끈 원동력은 도전심이었을까 탐욕이었을까.
다양한 인종과 함께 대서양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사람들이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건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일까 생각했다. 바다에서 공포를 느꼈던 옛날 사람들도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즐겼을지 궁금하다.
파두 공연도 한번 더 보고 싶어서 가이드가 알려준 곳으로 가봤다. 좋았는데 그보다 기억해둘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연주자가 파두에 대해 설명해 주기 전, 오늘은 다들 어디서 왔냐며, 에스파냐? 네덜란드? 이탈리아? 절매니? 유케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사우스 코리아?까지 물으며 관객들이 손들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관객이 노스 코리아? 라고 농담을 던져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설명하던 연주자도 북한에선 오기 힘들거라며 몇마디 하고, 농담했던 사람의 일행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쏘리, 쏘리 라며 사과했다.
나는 솔직히 기분이 약간 상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기분이 상했던건 민족 전체를 싸잡아서 비웃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고, 웃겼던건 나도 이미 분단되고 한참 뒤에 태어난 세대인지라, 민족은 같아도 엄연히 다른 나라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기분이 묘했다.